소액주주 혜택 늘리는 의무공개매수…100% 강제 땐 M&A 위축

입력 2025-11-27 18:17
수정 2025-11-28 01:42
국내에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7년 1월이다. 경영권 보호, 소액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 균점 등이 당시 제시된 목표였다. 하지만 그해 외환위기가 터지며 제도는 1년 남짓 만에 폐지됐다. 인수합병(M&A) 기반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가 필요해지면서다. 현재는 지배 주주의 지분만 매입하면 된다. 소액 주주의 지분을 매수할 필요는 없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8년의 시간을 거슬러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을 본격화하자 자본시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분위기다. 기업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권익 신장을 바라는 소액주주의 눈높이는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순기능을 살리면서도 M&A 위축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날의 검’ 의무공개매수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다음달 1일 금융위원회와의 당정협의회에서 ‘100%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22대 국회에선 여야를 합쳐 총 8건의 의무공개매수 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이 중 이정문 김현정 등 민주당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법안,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의원 시절 발의한 법안은 모두 100%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채택했다. M&A에서 인수자가 25% 지분 취득을 기점으로 잔여 지분을 모두 인수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의무공개매수 제도는 소액주주 권리 보호 측면에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도 매수 요건은 제각각이지만 잔여 주식 전체를 경영권 프리미엄 가격으로 매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관련 제도는 없지만 M&A 과정에서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하면 막대한 배상액이 부과될 수 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배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하는 현상은 글로벌 차원에서 비정상적인 행태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가 현실화하면 인수자가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시가의 두 배 또는 그 이상으로 지배주주 지분을 사가던 사례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경제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정무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3차 상법 개정안(자사주 소각 의무화)이 통과하면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다는 것이 경제계 우려인데 100%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하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인수자가 금액 부담을 느껴 적대적 M&A를 포기할 것이라는 의미다. ◇M&A 비용 급증 우려도다만 경제계에서는 잔여 지분 의무 인수 기준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안대로 잔여 지분 100%를 매입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단일 거래 인수비용이 수천억~수조원대로 급증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지분을 매수할 수 있는 극소수 투자자만 거래에 나설 수 있다. 사모펀드(PEF)업계는 “100% 의무매수가 현실화하면 사실상 상장사 M&A 금지법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결국 시장은 ‘돈 많은 극소수만 참여하는 폐쇄적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 기업이 상장폐지를 선택하는 ‘상장사 엑시트’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영권 거래가 막히고 외부 자본을 끌어올 통로까지 차단되면 기업은 시장에 남을 유인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분 100%를 가졌다면 공시 의무 등 각종 규제와 주주 관리 비용이 따르는 상장사 지위를 유지할 실익이 없기도 하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전체 투자시장이 위축되는 역효과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100%를 매수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단독 인수가 사실상 어려워져 여러 투자자가 함께 나서는 연합(컨소시엄) 방식의 공동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그만큼 지배구조는 불투명해질 수 있다. 한 서울권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 의무공개매수 제도는 ‘필요악’이자 ‘필요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의무매수 기준에 대한 숙고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은/최다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