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4명 회사에 10년간 205억…"그들만의 경영 자문료" [솔본그룹의 민낯①]

입력 2025-12-02 11:19
수정 2025-12-04 09:44
이 기사는 12월 02일 11:1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5억원. 인피니트헬스케어가 지난 10년 여 간 최대주주인 솔본에 지급한 수수료다. 경영자문, 자산운용 등의 명목이다. 솔본 직원은 4명이다. 금융업 라이선스도 없다. 솔본이 인피니트헬스케어에 어떤 자문을 제공했는지, 수수료를 산정한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코스닥 상장사다. 솔본은 인피니트헬스케어 수수료를 받아 상장을 유지하고 있다. 솔본 오너 일가는 이런 수수료를 기반으로 1인당 연 3억원 넘는 급여를 받고 있다. 인피니트헬스케어 주주들은 들고 일어서고 있다. 하지만 솔본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롬기술 장악한 홍기태 회장솔본은 코스닥시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회사다. 이 회사의 시작은 ‘IT버블’의 상징과 같았던 새롬기술이다. 새롬기술은 국제전화를 인터넷으로 무료로 할 수 있는 다이얼패드 서비스로 시장을 열광시켰다. 새롬기술의 주가는 1999년 상장 이후 반년 사이에 150배 폭등하면서 ‘코스닥의 기적’이라는 찬사가 붙을 정도였다.

버블의 한가운데에서 새롬기술은 유상증자로 3700억원의 현금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새롬기술의 세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 새롬기술의 매출은 전년의 절반 수준인 137억원으로 떨어졌고 영업손실은 216억원에 달했다. 창업자 오상수 전 대표는 유상증자시 자사인 다이얼패드의 지분율을 허위공시하고 분식회계로 매출을 무풀린 혐의 등으로 2002년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현금만큼은 남아 있었다. 이 자금을 노리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 인물이 홍기태 솔본 회장이다. 홍 회장은 도이치뱅크를 거쳐 엔젤 투자가로 활동해 오던 인물이다. 새롬기술 M&A의 동력은 한글과컴퓨터, 엔씨소프트, 새롬기술 등에 투자해 축적한 자금이었다. 홍 회장은 2002년 개인자격으로 새롬기술의 지분을 사들여 오 전 대표와 친인척 지분을 초과하는 10%대의 지분율을 확보, 적대적 M&A에 성공했다.

경영권을 손에 넣은 홍 회장은 새롬기술을 지주회사형 투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새롬기술의 이름을 솔본으로 바꾼 홍 회장은 쌓아둔 자금으로 인피니트헬스케어(구 인피니트테크놀로지), 프리챌, 더데일리포커스 등을 인수하고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와는 달랐다. 2003년 솔본에 흡수된 프리챌은 2011년 파산했다. 에스비인터랙티브 등 다른 회사들도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금융업 진출을 위해 2003년 70억원에 인수했던 솔본저축은행도 3년 만에 매각했다.

유일한 성공작이 인피니트헬스케어였다. X레이,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을 디지털화해 컴퓨터로 전달해주는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를 제공하는 회사다. 1999년 PACS에 의료보험이 적용된 이후 급격한 성장을 이어갔다. 솔본은 이 회사를 안정적 현금원으로 삼기 시작했다.자문수수료 계약의 실체는 지난 10년간 솔본이 인피니트헬스케어에서 가져간 용역수수료는 총 205억원. 인피니트헬스케어는 2019년까지 솔본에 용역수수료를 경영자문 명목으로만 지급하다가 2020년부터 자산운용 대가도 지급하기 시작했다. 수수료 명목으로 솔본에 흘러들어간 금액은 매년 증가했다. 2020년엔 18억원 수준이던 지급액이 지난해에는 34억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수수료 수익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3분기까지 지급한 수수료는 약 26억이다.

자문의 실체는 모호하다. 한 때 새롬기술이었던 솔본의 규모는 지주사로 탈바꿈한 뒤 쪼그라들었다. 현재 직원은 4명, 임원 포함 11명이 전부다. 금융투자업 라이선스도 없다. 작년 별도 매출은 52억원, 영업이익은 7522만원에 그쳤다. 인피니트헬스케어 경영에 수년간 관여했던 A씨는 “솔본에서 구체적인 자문을 받은 적이 없다”며 “기본적인 방향성 보고서조차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솔본은 올해 인피니트헬스케어와 위탁액 2%, 수익률이 기준을 초과하면 초과분의 20%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자금운용보수 계약까지 맺었다. 사모펀드(PEF)나 벤처캐피탈 수수료 구조와 비슷하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금융업 라이선스도 없는 회사에게 이 같은 금액을 보수로 지급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무, 재무, 인사노무 등 업무용역과 관련해선 보수를 산정하는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이사회 결의도 없이 솔본에 용역비를 지급해 왔다. 홍 회장은 솔본과 인피니트헬스케어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이해상충이 명백한 상황에서 이사회 승인도 없이 거액의 자문료가 꾸준히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소액주주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가 제기되자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지난 8월 뒤늦게 이사회를 열어 과거 계약 체결을 추인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후적으로 이사회가 추인했다고 해서 그 효력이 인정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인피니트헬스케어로부터 받은 경영자문수수료는 배당 및 급여 명목으로 솔본을 지배하는 오너일가에 흘러갔다. 홍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솔본 지분율은 60.26%에 달한다. 솔본이 흡수한 자금 대다수는 결국 오너 일가 몫이다.

오너 가족 일가가 급여를 모두 받고 있는 점도 도마에 오른다. 솔본에는 홍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홍 회장의 부인인 이혜숙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홍 회장의 딸인 홍수현 씨도 사내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들을 포함한 등기이사들은 작년 1인당 평균 3억500만원의 급여를 솔본으로부터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은 1인 평균 6400만원을 받는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인피니트헬스케어가 불특정 다수의 투자를 받은 코스닥시장 상장사인데도 여전히 오너일가의 ‘사금고’ 노릇을 하고 있는 점은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했다. 회사 관계자는 "특별히 할말이 없다"면서 대답을 피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