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에 대한 학대가 의심될 경우, 제3자가 대화를 녹음할 수 있게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교사가 근무 시간 내내 감시당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교원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학대처벌법,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에 착수했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19일 개정안을 내면서 스스로 학대를 방어할 수 없는 아동의 경우 제3자를 통해 녹음 자료가 수집되지 않으면 가해자 처벌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와 함께 웹툰 작가 주호민 사건을 대표 사례로 언급했다.
주호민 부부는 자녀가 다니는 특수 학급 교사 A씨가 2022년 9월 13일 학교 맞춤반 교실에서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며 고소했다. 이에 대한 증거로 아이에게 몰래 건넨 녹음기로 녹취한 음성을 제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주 씨 아들(당시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의 쟁점이었던 '몰래 녹음'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피해 아동 모친이 자녀 옷에 녹음 기능을 켜둔 녹음기를 넣어 수업 시간 중 교실에서 이뤄진 피고인과 아동의 대화를 녹음한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이런 녹음 파일과 녹취록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에 해당하므로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학대가 의심될 경우' 녹음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은 법이 통과될 경우 교사의 대화가 매시간 녹음돼 수업·상담·지도 과정에서 필요한 교육적 조치들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21일 성명서를 통해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이미 과도한 신고와 수사로 고통받고 있는 교사들을 언제든 녹음 파일 하나로 학대 가해자로 몰릴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의심만으로 제3자의 '몰래 녹음'까지 합법화한다면, 학부모의 주관적 불만과 오해가 곧바로 녹음·신고·수사로 연결되는 구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돌발적인 상황에 따라 즉각적인 신체적 개입과 생활지도가 발생할 수 있는 특수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학생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마음 놓고 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녹취의 편집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교사의 일부 표현만 잘라낸 녹음 파일이 전체 맥락을 지운 채 '학대 증거'로 제시될 위험이 크다"며 "결국 교사는 수업 한마디, 생활지도 한마디조차 녹음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학생과 제대로 눈을 맞추고 정당하게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또한 "'아동학대처벌법'은 아동을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어, 전국의 모든 유·초·중·고교 수업 중 제3자가 몰래 녹음한 내용을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며 법적 증거로 제출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다"며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뿐 아니라, 교실이 불신과 감시의 공간으로 변질되어 교육 현장 전반에 심각한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총은 "녹음 우려는 특수교사의 교육적 상호작용을 위축시키고, 장애 학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해 통합 학급 기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며 "결국 보호받아야 할 학생들이 오히려 학교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역설적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제3자의 녹음이 없다면 장애 학생들을 보호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호소한다. 결국 개정안은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헌법적 권리라는 입장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장애 아동 학대는 은폐되기 쉬운 범죄로, 목격자나 주변인의 침묵은 피해의 지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제3자 녹음은) 아동의 인권 보호와 학대 방지를 위한 공익적 행위"라고 지지 반응을 보였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