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글로벌 ESG 규제 본격화...제품설계·공급망 등 재편해야"

입력 2025-12-04 06:00
[한경ESG] 커버 - 미리 보는 2026 ESG 키워드
전문가 인터뷰 ③ 신언빈 ERM 파트너



2026년은 국내 4차 배출권거래제(K-ETS)와 글로벌 규제(CBAM, ESPR)가 동시에 조여오는 해다. 신언빈 ERM 파트너는 두 규제를 단순히 ‘환경정보를 요구하는 규제’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접근이라고 말한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에코디자인 규정(ESPR)은 우리 제품의 설계 방식과 공급망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라는 요구다.

신 파트너는 우리 기업이 공급망과 발맞춰 제품설계에서 공급망까지 아우르는 데이터 거버넌스를 갖추고, 이를 고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 와중에 기존 부서 간 의사결정 구조를 혁신하고, 장기 시나리오 기반의 탄소비용 정량 분석과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한 전사적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라고 추천했다. 다음은 신 파트너와의 일문일답.

- 2026년 국내 4차 배출권거래제와 글로벌 규제(CBAM, ESPR)가 시작된다. 기업이 해야 할 조치는.

“지금은 CBAM과 ESPR이 가져올 사회적·경제적 파급효과를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보다 구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두 규제를 단순히 ‘환경정보를 요구하는 규제’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접근이다. CBAM과 ESPR이 공통적으로 촉구하는 것은 우리 제품의 설계 방식과 공급망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라는 요구이며, 이는 단순 규제 대응을 넘어 제품·공급망 중심의 산업구조 혁신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는 CBAM을 ‘탄소집약도 기반의 탄소비용 부과 체계’로, ESPR을 ‘제품 지속가능성 요건을 강화하는 생태설계 규제’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규제 모두 제품 수준과 공급망 수준에서의 통합적 지속가능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명확하다.”

- 앞으로 기업이 갖춰야 할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앞으로의 경쟁력은 규제를 ‘충족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규제가 요구하는 제품 혁신(product innovation)’을 얼마나 선제적으로 구현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CBAM의 경우 공급망 배출의 핵심 요인을 정교하게 분석해 이를 기반으로 제품 설계와 생산 공정을 혁신해야 하며, 단순한 내부 감축이 아니라 공급망 전반과 함께 추진하는 전방위적 감축 전략이 필요하다. ESPR 역시 제품의 수명, 내구성, 수리 용이성, 재활용성, 재생 원료 사용 비율, 화학물질 구성 정보, LCA 기반 환경발자국 등 제품의 물리적·구조적 설계 요소 전반을 재검토해 이를 제품 경쟁력의 새로운 요소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 준법 활동이 아니라 제품 개발 전략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 공급망 데이터 구축도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ERP, 전과정평가(LCA)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이 시스템만으로는 ESPR·CBAM이 요구하는 수준과 형태의 데이터를 비용효율적으로 통합·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제품 구성요소, 원재료 출처, 재활용 원료 비율, 공정별 배출량, 화학물질 및 물질 구성 정보, 환경성능 지표 등 이질적이고 복잡한 데이터가 전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협력사의 데이터 제공 능력까지 포함하는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요구된다. 이 같은 기반 위에서만 기업은 제품 개발 전략, 브랜드 가치 전략, 조달·생산 운영 방식, 시장가격 경쟁력 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경쟁 기준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CBAM과 ESPR 대응은 하나의 규제 대응이 아니라 전사적 사업 프로세스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 기업은 단기간에 모든 걸 갖춰야 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변화의 폭과 속도가 크다고 해서 기업이 단기간에 완성형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CBAM과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는 이제 막 본격적인 시행 국면에 진입했으며, 규제당국 역시 초기 몇 년간은 각국 기업의 준비 정도를 관찰하면서 검증 강도를 점진적으로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업에 일종의 과도기적 여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향후 도래할 ‘현미경 검증’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 준비 기간이다. 문제는 이 시간을 단순한 ‘유예기간’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기업의 데이터 체계 전반을 재편하는 전략적 시간으로 활용하느냐다. 오히려 이 변화를 제품 경쟁력과 공급망 경쟁력 강화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기업이 당장의 완성도보다 변화의 방향성과 단계적 고도화를 우선순위로 두고 움직여야 할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 기업이 수집해야 하는 데이터는 어떤 것들이 있나.

“CBAM과 ESRS/IFRS 공시는 그 본질에서 ‘데이터 제출’보다 데이터의 출처, 산정 방식, 일관성, 검증 가능성, 감사 추적성을 요구하는 규제다. 즉 ‘숫자’보다 ‘숫자가 도출된 방식과 근거’가 더 중요해지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완벽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사 데이터 거버넌스를 단계적으로 고도화하기 위한 로드맵 수립 및 실행이다. 우선 데이터 소유권과 책임 체계를 명확히 하고, 데이터 품질 기준을 정의하며, 공급망으로부터 취득하는 데이터의 단위·포맷·증빙 기준을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단계만으로도 기존의 엑셀·수기 기반 방식에서 벗어나 일관성과 재현성을 갖춘 기초체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배출량, 제품 탄소발자국(PCF), 공급망 재료 정보 등을 자동화해 계산할 수 있는 솔루션과 증빙 등을 중앙화할 수 있는 솔루션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최소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도입 초기부터 구조적 변화 로드맵을 고려해야 한다.”

- 제품 재설계와 생산 검토를 위해 기업 내 의사결정 구조는 어떻게 재편되어야 하나.

“포장 폐기물 규제(PPWR)와 ESPR은 규제 → 설계 → 소재 → 생산 → 공급망 → 데이터가 하나의 유기적 흐름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존 조직이 갖고 있는 역할을 규제 요구에 맞게 재정의하고, 기능 간 협업의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선, ESG 또는 규제 대응 부서는 규제 해석·전사 조율·진척 관리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 R&D조직은 규제를 실제 제품개발 프로세스에 반영하고, 생산 조직은 설계 변경의 가능 여부와 생산성 및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구매 조직은 규제 충족이 가능한 소재 공급사 발굴 및 새로운 공급망 구조를 짜고, IT조직은 디지털 제품 여권 구축(DPP) 등을 정립해야 한다.”

- EU 규제 대응을 위해 대기업은 협력사에 어디까지,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

“동일 산업 내 대기업들이 협력해 표준화된 지원 체계를 공동 기획하고, 협력사에 일관된 기준을 제공하는 산업생태계 기반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사에 규제 요구사항에 대해 명확히 제공해 공급망 데이터의 오류·불일치를 예방하고, 협력사가 실제 규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협력사가 데이터를 제출하고 증빙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기반 인프라 제공이 필요하다. 대기업이 주도하되 산업 전반에 개방 가능한 공동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식이 가장 비용 효율적이면서 실효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 4차 K-ETS의 유상 할당 확대와 EU CBAM의 인증서 구매 의무가 겹치면서 기업의 탄소비용 부담이 커진다.

“탄소비용 시대에 기업이 재무적 지출을 최소화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탄소비용 관리 전략이다. 그 핵심축은 ‘장기 시나리오 기반의 탄소비용 정량 분석’,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한 전사적 의사결정 체계 구축’ 이 2가지다. 탄소비용의 재무적 시나리오 분석은 기업이 속한 지역에서의 정부 정책 시나리오(예, 유상 비중 확대 속도, 배출권 가격 전망)와 사업 시장에서의 규제 시나리오(예, EU CBAM 인증서 가격, 적용 품목 확대 가능성), 그리고 국제 에너지 가격과 연결된 시장 시나리오를 결합해 향후 5년·10년간 예상되는 탄소비용 총액, 감축 투자와 배출권 구매 간 최적 조합, 제품·사업부 단위의 손익 임계점 변화를 정량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또 기업이 내부 탄소가격을 제대로 도입하면 탄소비용을 재무적으로 조기에 내부화해 미래 리스크를 현재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다. 배출권 구매 대비 감축 투자의 투자수익률(ROI)이 정량적으로 비교 가능해지고, 제품별 탄소비용이 P&L에 녹아들어 탄소 효율이 높은 제품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이 가능해진다.”

- 과거 ESG가 ‘평판 관리’였다면 2026년부터는 명백한 무역장벽이자 비용이 되고 있다.

“기업경영에서 ESG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nice to have’, 즉 ‘하면 좋고, 안 해도 당장은 문제없는 활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규제 환경이 급변한 지금, ESG는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남기 위해 갖춰야 하는 확실한 ‘must have’다. 2026년 이후 ESG는 여기서 더 나아가 ‘beyond to have’ 단계로 진입한다. 이는 단순한 시장 진입 요건을 넘어 재무구조, 사업전략, 제품 경쟁력, 공급망 안정성까지 좌우하는 기업 생존의 핵심 요소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협력사가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면 원청의 수출이 막히고, 제품이 설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판매가 금지되며, 탄소비용이 증가하면 기업의 수익성이 직접적으로 흔들린다. 이제 ESG는 하지 않으면 사업이 멈출 수 있는 운영 조건이며, 잘할수록 비용을 줄이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 도구다. 기업이 이 변화의 의미를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이고, ESG를 사업·재무·제품 전략에 실질적으로 통합하느냐에 따라 향후 3~5년의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다.”

구현화 한경ESG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