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 금의 역설: 비트코인은 왜 아직 시장의 왕관을 쓰지 못하고 있을까

입력 2025-11-24 14:05
수정 2025-11-24 14:08
| 김서준 해시드 대표

2024년 12월, 금융 시장의 역사적 이정표가 세워졌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의 총 운용자산(AUM)이 처음으로 전통적인 금 ETF를 추월한 것이다. 불과 11개월 만에 이룬 이 성과는 놀라운 속도의 성장을 보여준다. 2025년 11월 현재 비트코인 ETF의 AUM은 약 11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금 ETF와의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다. 압도적인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금처럼 ‘안전하고 묵직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나스닥이 흔들릴 때마다 함께 요동치며, 여전히 ‘위험 선호(Risk-on)’ 자산으로 분류된다. 이 ‘디지털 금의 역설’은 어디에서 기인하며, 비트코인은 언제쯤 진정한 왕관을 쓸 수 있을까? 근본적 괴리: '규모'는 커졌으나 '신뢰'와 '체질'은 미성숙금은 5000년의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가치저장수단으로서의 신뢰를 축적했다. 로마 제국의 몰락, 대공황, 두 차례의 세계대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2008년 금융위기까지 금은 모든 격변을 견뎌냈다.

반면 비트코인의 16년은 금융 역사에서 찰나에 불과하다. 시장의 신뢰는 ‘린디 효과(Lindy Effect)’를 따른다. 즉 어떤 것이 오래 존속할수록 앞으로도 더 오래 존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아직 진정한 글로벌 금융위기나 대규모 지정학적 충격을 경험하지 못했다.

현재 비트코인 ETF에 유입된 120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은 ‘수익률 극대화’와 ‘변동성 베팅’을 노리는 헤지펀드와 공격적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다.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 아니라 ‘고위험-고수익 기술주’의 극단적 버전에 가깝다.

금 ETF의 자금 구성을 살펴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중앙은행이 22%, 연기금이 18%, 보험사가 15%를 차지하며, 개인 장기투자자가 25%, 기타가 20%를 구성한다. 반면 비트코인 ETF는 헤지펀드가 35%, 트레이딩 데스크가 25%로 전체의 60%가 단기 투기성 자금이며, 벤처캐피탈 15%, 개인 단기투자자 20%, 기타 5%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자금 구성의 차이는 시장 변동성에 대한 반응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비트코인은 금처럼 보유되는 것이 아니라 나스닥과 함께 가장 먼저 청산되는 자산이 된다. ‘양적 성장’은 이루었으나, ‘질적 체질’은 여전히 위험 선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2024년 이후 비트코인과 나스닥 100 지수 간의 60일 상관계수는 평균 0.65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비트코인이 여전히 ‘기술주의 극단적 버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금과 나스닥의 상관계수는 -0.15에서 +0.1 사이를 오가며 독립적이거나 역상관 관계를 보인다.

더욱 문제는 위기시 행동 패턴이다. 2022년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 동안 나스닥이 33% 하락할 때 비트코인은 64%라는 두 배에 가까운 폭락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금은 단지 3% 하락에 그쳤다. 이는 비트코인이 아직 ‘위험자산의 왕’으로 취급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2025년의 충격적인 반전: 금의 재부상2024년 말 비트코인 ETF가 금 ETF를 추월했지만, 2025년 들어 상황이 극적으로 역전됐다. 2025년 8월 기준 금 ETF는 3250억 달러로 치솟은 반면, 비트코인 ETF는 1620억 달러에 머물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성과의 격차였다. 금 가격은 연초 대비 60% 급등하여 온스당 4000달러라는 역사적 고점을 경신한 반면 비트코인은 같은 기간 20% 상승에 그쳤다.

이러한 성과 격차는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비트코인이 정말 디지털 금이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커뮤니티 내에서 확산됐다. 일부 장기 투자자들조차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고민하고 있다.

금의 재부상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기반한다. 무엇보다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매입이 핵심 동력이었다. 2025년 상반기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량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중국, 인도, 러시아가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금 보유량을 급격히 늘렸다. 터키와 폴란드 같은 신흥국들도 외환보유고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하며 이 흐름에 동참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심화도 금 수요를 부채질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며 새로운 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면서 투자자들은 검증된 안전자산을 찾았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무역 긴장까지 더해지며 금의 매력은 더욱 부각되었다.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도 금 선호 현상을 강화했다. 주요국의 재정적자가 확대되면서 법정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고, 실질금리가 여전히 마이너스인 많은 국가에서 금 수요가 폭증했다. 결정적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디지털 자산보다 실물 자산을 선호하는 심리가 다시 강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비트코인 지지자들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가장 큰 충격은 심리적인 것이었다. ‘디지털 금’이라는 내러티브가 약화되면서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일종의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위기 시 여전히 금을 선택한다는 현실은 뼈아픈 교훈이었고,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이 안전자산 지위를 저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투자 전략 면에서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일부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조차 금 투자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으며, '비트코인 60% + 금 40%' 같은 하이브리드 전략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가치 보존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은 비트코인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적 성장은 이뤘지만, 질적 전환은 여전히 미완성 상태다. 비트코인의 질적 도약을 위한 4대 핵심 트리거비트코인이 진정한 디지털 금으로 인정받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장기 투자 기관들의 전략적 채택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공식적인 선언이다. 세계 10대 국부펀드가 포트폴리오의 2?5%를 비트코인에 배분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고, 미국의 주요 연기금들이 비트코인에 ‘전략적 자산’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특히 '10년 이상 보유' 같은 장기 투자 정책을 명문화해 단순 투자를 넘어 ‘핵심 자산군’으로 공식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움직임: 2025년 들어 여러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블랙록의 IBIT가 970억달러 규모로 성장하며 기관 수요를 주도하고 있으며, 일부 미국 주 연기금들이 비트코인 ETF 투자를 검토 중이다. 아부다비투자위원회(ADIC)도 비트코인 ETF에 투자를 시작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로 전체 포트폴리오 대비 규모는 크지 않다.

둘째, 국가 차원의 공식 채택은 비트코인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촉매다. 주요 7개국(G7) 국가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의 1% 이상을 비트코인으로 편입하거나, 국제통과기금(IMF)이 특별인출권(SDR) 바스켓에 비트코인을 포함시킨다면 게임의 규칙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또 바젤III 규제가 개편돼 비트코인이 티어 1(Tier 1) 자본으로 인정받는다면 전 세계 은행들이 자본 부담 없이 비트코인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현재까지 엘살바도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법정화폐 채택은 상징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 진정한 변화는 주요 경제대국이 움직일 때 시작될 것이다.

최근 움직임: 2025년 11월, 미국 하원에서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추가하자는 제안이 제출되었다. 이는 미국이 비트코인의 공식 채택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셋째,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실전이다. 비트코인이 진정한 안전자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실제 위기 상황에서 금과 유사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은행 위기가 발생할 때 비트코인이 급등하거나, 대만해협이나 중동에서 지정학적 충격이 일어날 때 금과 함께 상승해야 한다. 또 주요국 통화가 폭락하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대안 통화로 기능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최근 움직임: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당시 비트코인이 20% 이상 급등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단발성 이벤트에 그쳤으며, 아직 일관된 패턴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비트코인이 진정한 안전자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이러한 사례가 반복적으로 관찰되어야 한다.

넷째, 비트코인의 기술적 진화와 인프라 개선도 필수적이다. 라이트닝 네트워크 같은 레이어2 솔루션이 대중화되어 일상적인 결제에 널리 사용되어야 하고, 대형 은행들이 직접 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또 비트코인 채굴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90% 이상으로 높아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고, 양자컴퓨터에 대한 저항성을 확보해 장기적인 보안성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움직임: 2025년 현재 라이트닝 네트워크 채널 수가 15만개를 돌파했으며, 주요 은행들이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를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 채굴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50%를 넘어서며 ESG 우려가 완화되고 있다. 예측 타임라인: 2026~2030년,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첫 번째 단계(2026~2027년)에서는 ETF 자금 유입이 안정화되면서 비트코인의 일일 변동성이 5% 이하로 정착할 것이다. 기관투자자 비중이 60%를 돌파하며 시장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첫 번째 주요 20개국(G20) 국가가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공식 검토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주요 연기금 1~2곳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선언하는 획기적인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2028~2029년)에서는 제도권 편입이 본격화된다. 주요 국부펀드 2?3곳이 공식적으로 비트코인 투자를 확대하고, 바젤 규제 개선안이 통과되어 은행들의 비트코인 보유가 용이해질 것이다. 비트코인과 나스닥의 상관계수가 0.3 이하로 하락하며 독립적인 자산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고, 첫 번째 금융위기에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입증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단계(2030년)에는 비트코인이 마침내 ‘디지털 금’의 지위를 확립한다. 첫 G7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에 비트코인을 편입하고, 복수의 위기 상황에서 안전자산 역할을 완전히 입증하게 될 것이다. 변동성은 20?25% 수준으로 하락하여 금과 유사한 수준에 도달하며, 비트코인은 글로벌 자산배분의 필수 요소로 완전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시간의 문턱을 넘어서비트코인은 이미 ‘양적 성장’을 완성했다. 2024년 12월 금 ETF를 추월한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2025년 금의 재부상이 보여주듯 진정한 ‘디지털 금’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검증, 자금의 질적 전환, 그리고 실전에서의 입증이 필요하다.

2026년부터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첫 번째 G20 국가의 공식 검토, 대형 연기금의 전략적 자산 선언, 그리고 실제 위기 상황에서의 부분적 검증이 맞물리면서 비트코인은 점진적으로 ‘위험자산’의 꼬리표를 떼고 2030년경 ‘디지털 금’의 왕관을 쓸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초입에 서 있다. 5000년 금의 역사에 도전하는 16년 비트코인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 약력

△서울과학고 조기졸업
△포항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노리 최고제품책임자(CPO)겸 공동창립자
△해시드 대표이사
△소프트뱅크벤처스 벤처파트너
△국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자문위원
△교육부 미래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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