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세무사시험 '부실채점' 국가배상책임 없어"

입력 2025-11-23 10:16
수정 2025-11-23 10:17


채점 논란을 빚은 2021년 세무사 자격시험에서 점수 미달로 불합격했다가 재채점 끝에 합격한 응시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2021년 세무사 자격시험 응시자 A씨 등 18명이 시험 시행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해당 채점 논란은 2021년 9월 치러진 제58회 세무사 자격시험 2차 시험에서 채점이 일관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이듬해 4월과 7월 고용노동부와 감사원이 실시한 감사에서는 세법학 1·2부 각 1문제에서 채점위원이 같은 답안 내용에 서로 다른 점수를 부여하거나 채점 기준을 임의로 변경하는 등 부실 채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인력공단은 그해 8월 감사 결과에 따라 재채점을 거쳐 기존 합격자 706명에 더해 추가 합격자 75명을 발표했다. 당초 점수 미달로 불합격했던 원고들도 재채점을 통해 최종 합격했다.이후 A씨 등 원고 37명은 뒤늦은 합격으로 1년 동안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을 잃고 정신적 손해도 입었다며 같은 해 11월 공단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2심은 공단과 국가가 원고들에게 각 3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 패소 뒤 항소한 18명에 대해 공단이 총 6억66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2심은 공단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채점이 일관성 없이 이뤄져 시험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재량권 일탈·남용이 있었고, 처음부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원고들이 당초 불합격 처분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단의 행위가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만큼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문제들과 관련해 감사 결과는 “같은 답안에 대해 다른 점수를 부여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일 뿐, 원고들의 답안에 최초 채점 당시에도 점수가 당연히 부여됐어야 하는지에 관해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최초 채점과 재채점 결과가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최초 채점 과정이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문제 제기 이후 신속히 감사가 이뤄지고 공단이 지체 없이 재채점을 실시하는 등 비교적 신속하게 구제 조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국가와 공단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시험을 잘못 채점한 공무원의 '주의의무 위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험 채점과 관련된 객관적 기준 없이 자의적 행정의 오남용을 허용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원고들을 대신해 사건을 대리한 이준영 법무법인 로드맵 변호사는 “공무원이 출제 및 채점 감독을 소홀히 한 결과 수험생들이 실제 손해를 입었음에도 책임을 묻지 않는 건 형식적인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