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산업이 정보기술(IT)과 융합으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런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금산분리 규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확산하는 혁신 모델을 정부가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행 국내 규제 환경에선 미국의 애플카드와 중국식 앤트그룹(알리페이) 결제 시스템은 도입이 불가능하거나 불법 소지가 크다. 금산분리 원칙에서 파생된 은행법, 여신전문금융업법상의 규제가 금융과 IT의 ‘융복합’ 사업을 막고 있어서다.
중국의 알리페이는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막대한 쇼핑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제·대출·투자를 아우르는 거대 금융 제국을 건설했다. 산업자본이 금융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생긴 데이터 공유 시너지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애플이 골드만삭스와 협력해 내놓은 애플카드도 한국에선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상업자표시카드(PLCC) 형태를 취하지만, 실상은 애플이 지갑 앱을 통해 고객 경험과 데이터, 캐시백 설계를 주도하고 금융회사는 자금을 지원하는 구조다. 국내에선 카드업 라이선스가 없는 기업은 카드 모집인 역할에 그치거나 카드사가 주도권을 쥔 제휴만 할 수 있다.
은행법상 ‘은산분리’ 원칙은 한국 금융권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다.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은 시중은행 지분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있지만, 삼성과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집단은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과 금융이 시너지를 낼 길이 막혀 있다.
금융회사들도 다양한 사업이 제한된다. 은행이 알뜰폰, 배달 앱 등 생활 서비스에 진출해 비금융 데이터를 확보하려고 해도 은행법상 ‘부수 업무’ 규제에 가로막힌다.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배달앱(땡겨요)을 운영하는 신한은행이나 알뜰폰을 파는 국민은행(리브엠)이 겨우 숨통을 틔워준 사례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