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 아이를 키우는 김모씨는 이달 초 영어학원 유치부(영유) 입학 상담을 신청하면서 “꼭 아이와 함께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상담 당일 강사는 커리큘럼을 설명하는 중간중간 아이에게 영어로 질문을 던져 응답 속도와 어휘 수준 등을 확인했다. 강사는 김씨에게 구체적인 점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세 반(A~C) 가운데 B반 등록을 권했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이달 영유 설명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지필고사 대신 상담·관찰 방식으로 아이의 영어 수준을 파악하는 이른바 변형 레벨테스트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영유아 대상 영어 입학시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현장에서 이를 우회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변형된 레벨테스트는 그림책과 사물 카드를 활용해 동물 이름이나 특징을 영어로 묻고 아이의 반응을 통해 수준을 파악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형식적으로는 ‘놀이 관찰’이라고 소개되지만 아이의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누는 사실상 레벨테스트라는 것이 학부모들의 생각이다.
경기 성남 위례신도시의 한 영어학원에서 이런 방식의 상담을 받은 학부모 박모씨는 “상담료로 2만원을 냈는데 사실상 레벨테스트 비용으로 느껴졌다”며 “레벨테스트를 하지 않는 학원으로 보이기 위해 이름만 바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학원 원장은 “관찰 과정은 지필고사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발달 단계와 학습 상황을 고려해 수업 수준을 조정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를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회에서는 지난 9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원생 모집이나 반 배정을 목적으로 시험·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유치원 형태로 운영되는 것에 반대한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모호한 ‘우회 평가’를 이어갈 바에야 차라리 공식 테스트를 허용해 수준을 명확히 가르는 편이 낫다는 반응이 나온다. 내년 3월 자녀를 영유에 보낼 예정인 정다래 씨는 “아이마다 영어 노출 정도와 발달 속도가 다른데 공식적인 기준 없이 반을 배정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며 “초·중·고교에서는 맞춤형 교육을 강조하면서 유아에게는 이를 금지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원가 내부에서도 레벨테스트 금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한 영유에서 강사로 일하는 김모씨는 “지금처럼 상담·놀이형 관찰은 겉으로 보기에 적응 상담이나 체험수업으로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어 규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학원이 점수나 등급을 문서로 남기지 않으면 당국도 제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과도한 평가 관행은 제한하되 필요한 수준의 맞춤형 교육은 유지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형식만 바꾼 사실상의 레벨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현실을 반영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여러 방향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