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누가 주인공이 될 것인가

입력 2025-11-21 17:21
수정 2025-11-22 00:14
글로벌 문화산업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K콘텐츠가 만들어낸 파급력은 이미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서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23년 2500억달러 규모이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2027년 480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세계 경제가 3% 안팎 성장할 때 이 산업은 17~20%씩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 숫자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누가 이 시장의 중심이 될 것인가.” 많은 도시가 손을 들었다. 미국 뉴욕·로스앤젤레스(LA)는 창업과 할리우드를 기반으로, 영국 런던은 미디어와 예술 생태계를 기반으로, 싱가포르는 자본과 플랫폼을 앞세워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지난 3년, 시장의 흐름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세계의 시선이 서울에 꽂히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가 만드는 새로운 산업 축
서울의 경쟁력은 의외로 단순하다. 서울은 물리적·산업적·문화적 인프라가 가장 짧은 거리 안에 압축된 도시다. 강남과 상암DMC에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산업이, 동대문과 DDP에는 패션·제조 클러스터가, 삼성동에는 글로벌 브랜드와 정보기술(IT) 기업이, 성수동에는 브랜딩·편집·디자인 스튜디오가, 홍대와 연남동에는 크리에이터 커뮤니티와 라이프스타일 허브가 자리 잡고 있다. 크리에이터산업은 더 이상 플랫폼에서 조회수를 획득하는 산업이 아니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상품을 제작하고, 유통망을 열고, 세계와 연결하는 산업이다. 그 과정에서 서울만큼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도시는 드물다.

플랫폼은 언제든 바뀌지만, 크리에이터가 일하고 연결되는 기반은 도시가 만든다. 그래서 플랫폼이 흔들릴수록 도시는 더욱 중요해진다. 도시는 알고리즘이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재작년에 이어 작년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인플루언서 페스티벌 ‘서울콘’에 50개국 이상에서 3500여 개 팀의 인플루언서가 모였다. 플랫폼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에 모인 것이다. 이 움직임은 그저 한 번의 축제가 아니라 도시가 크리에이터산업의 새로운 거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도시 브랜드 가치 높이는 ‘서울콘’소규모 팬층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들의 활동이 촉발하는 새로운 도시경제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글로벌 트렌드 전환을 암시한다. 팔로어 1만 명 미만의 인플루언서가 팔로어 10만 명 이상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보다 높은 참여율을 기록한다는 데이터는 이미 보편적이다. 이는 산업 구조가 ‘소수의 슈퍼스타 독점 모델’에서 ‘다수의 소규모(나노·마이크로) 크리에이터 분산 모델’로 이동 중이라는 뜻이다. 이 변화는 도시경제에 커다란 기회를 제공한다. 홍대·연남동·성수동과 같은 지역에서는 공유 스튜디오, 팝업 스토어, 공동 제작 공간이 빠르게 증가했다. 이는 도시의 경제 구조를 재정의한다. 도시가 크리에이터의 초기 비용을 줄여주는 순간, 그 지역은 곧 새로운 산업 단지로 변모한다. 과거 제조업이 공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바꿨다면, 지금은 ‘창작자’가 도시의 축을 바꾸고 있다.

도시는 반복되는 축제를 통해 ‘산업의 수도’가 된다. 칸 영화제, 라스베이거스 CES, 밀라노 패션위크가 산업의 중심지가 된 이유는 하나다. 반복과 축적이다. 한 번의 성공은 이벤트지만, 열 번의 성공은 ‘역사’가 된다. 서울에서도 최근 몇 년간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허브를 표방한 대형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그중 대표적 사례인 서울콘은 이미 글로벌 인플루언서·K뷰티·패션·게임·콘텐츠를 동시에 묶어내고, 도시 브랜드와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결합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콘텐츠산업의 수도’ 잠재력 큰 서울만약 서울이 향후 10년간 이 흐름을 유지하고, 세계 크리에이터가 매년 다시 찾는 도시가 된다면 서울은 단순한 페스티벌 개최 도시가 아니라 ‘글로벌 크리에이터 수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중심은 영국 맨체스터였다. 20세기 금융과 기술은 뉴욕,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렇다면 21세기 콘텐츠·문화·창작산업의 중심은 어디가 될까? 서울은 그 답이 될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 기존 패션·뷰티·게임·미디어산업의 집적 그리고 도전적인 창작 생태계까지.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도시 경쟁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이며, 서울은 그 변화의 전면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