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도 못가 고철될라"…'AI 데이터센터' 좌초 자산 경고한 이유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5-11-24 07:00
수정 2025-11-2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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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 등 일부 인공지능(AI) 인프라가 몇 년 안에 쓸모없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다. AI 학습 등에 지금만큼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 없다는 분석이다. 이런 현상이 확산하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AI 인프라 거품' 우려가 더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기술 혁신의 부작용?22일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현재의 AI 구동 설계 방식은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IEA는 작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을 약 415TWh로 추산했다.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 정도다. 오는 2030년에는 1000TWh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존 메디나 부대표는 "이제는 기가와트(GW) 규모 프로젝트까지 등장했다"며 데이터센터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력 인프라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더 큰 문제는 해당 인프라의 경제적 수명이 예상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통상 데이터센터 설비의 회계상 내용연수는 5~10년으로 책정된다. 하지만 AI 서버와 GPU의 기술적 수명은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 전문매체 테크버즈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들이 사용하는 GPU 감가상각 기간은 2~6년으로 제각각이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사실상 '연 단위'로 신규 GPU 세대를 출시하면서 회계상 수명과 기술 수명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공공정책 매체인 '디 아메리칸 프로스펙트'는 AI 데이터센터에서 GPU가 2년을 넘기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최근 유명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지적한 'AI 거품론'의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기술로 대규모 GPU 대체업계에선 이런 변화에 더 치명적인 것은 따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고리즘 효율성의 극적인 개선이다. 글로벌 AI 연구기관 에포크(Epoch AI)에 따르면 최근 AI가 특정 성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연산량은 약 8개월마다 절반으로 줄고 있다. 이는 실질 연산 예산이 약 9개월마다 2배가 되는 것과 비슷한 속도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월에 나온 중국의 AI 모델 딥시크 V3 모델이다. 오픈AI의 GPT-4o 대비 학습 비용을 약 18배, 추론 비용을 약 36배 낮췄다.

이는 AI 알고리즘 혁신이 기존 AI 인프라의 경제성을 깎아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AI의 대규모언어모델(LLM) 훈련 비용을 기존보다 10분 1로 줄인 AI 알고리즘이 보편화되면 현재 투입된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상당량은 사용되지 않은 유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에너지 효율 단체인 ACEEE도 최근 보고서에서 “AI 기술이 더 효율적으로 변할수록, 지금 짓는 데이터센터가 좌초 자산(stranded assets)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존 AI 데이터센터가 특정 세대의 GPU·아키텍처(설계)에 최적화돼 있다. 하지만 알고리즘·하드웨어 효율이 급변하면 기존 데이터센터는 경제성이 떨어진 채 쓸모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AI업계에선 "푸리에 변환(FFT)에 준하는 혁신적 알고리즘 개선이 나온다면 AI 인프라 경제성은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푸리에 변환(FFT)은 신호 처리·통신·음성·영상 분야 전체의 효율을 통째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알고리즘 혁신의 사례로 꼽힌다.

업계에선 완전히 다른 AI 패러다임 전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뉴로모픽 컴퓨팅이 대표적이다. 인간 두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칩은 초저전력 병렬연산을 구현한다. 인텔이 개발 중인 '로이히 2' 칩은 일부 작업에서 기존 CPU와 GPU 대비 100배의 에너지 효율을 보였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거대 GPU 팜 식의 데이터센터 필요성은 급감할 수 있다.

논란이 있는 양자 AI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터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상업적으로 실용적인 양자컴퓨팅이 3~5년 이내에 가능할 것"이라며 "구글의 자체 양자 칩 ‘Willow’와 새로운 양자 알고리즘 ‘Quantum Echoes’가 기존 슈퍼컴퓨터 대비 1만3000배 빠른 성능을 보이며, 실제 분자 구조 해석 등 실용적 응용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최근 거대 AI 모델 대신 작고 특화된 모델을 기기에서 구동하는 추세도 확산하고 있다. 앤드루 응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작은 모델 여러 개가 큰 모델 하나보다 경제성이 높을 수 있다"며 분산형 AI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재 중앙집중식 데이터센터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이 현실화하면 기존의 GPU 집약적 인프라는 '좌초된 데이터 센터'로 전락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 충격파AI 인프라의 좌초 자산 리스크는 빅테크 기업의 재무 악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배관' 역활을 하는 단기자금 시장 등의 최근 구조적 취약성과 맞물려 위험이 증폭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인프라 투자는 막대한 부채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2028년까지 빅테크들이 AI 인프라에 약 3조 달러를 투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자금은 주로 회사채 발행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조달된다. 만약 AI 인프라가 좌초 자산으로 전락하면 천문학적인 채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한 해에만 알파벳(구글), 아마존, 메타, 오라클 등가 AI 인프라 명목으로 발행한 신규 채권이 약 1200억 달러에 달한다. 2030년 전까지 누적될 AI 데이터센터 투자 중 약 1.5조 달러가 부채·사모크레딧 등 신용으로 조달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이미 '담보 과잉'과 '현금 부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금융 시스템에 추가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유동성 경색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산 가격 급락이 유동성 위기로 급격히 전이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보인다. AI 데이터 센터 건설 붐이 글로벌 채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낙관론도 여전히 강력하다. AI 활용 범위가 급격히 커지면서 현재의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고,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반론의 핵심 근거 중 하나는 AI 수요의 지속적인 증가다. AI 기술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필요한 AI 연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알고리즘 효율화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감가상각은 회계상의 비용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데이터센터 건물이나 전력 설비 등 일부 자산은 장기간 활용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GPU 전문 임대업체인 코어위브는 구형 GPU도 95% 정도의 가치를 유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반론이 기술 혁신을 과소평가한다는 지적도 있다. 1990년대 광케이블 버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례는 기술 혁신이 어떻게 기존 인프라를 쓸모없게 했는지 보여줬다. 당시 광케이블 용량을 폭증시킨 기술 혁신으로 기존 물리 인프라의 상당 물량이 수십 년 동안 활용되지 못하고 묶였다. AI 인프라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I 인프라 거품이 꺼질 경우 그 충격은 천문학적일 수 있다. 매켄지의 추정대로 AI 인프라 투자(CAPEX)가 3.7조~7.9조 달러에 달한다면 기술 혁신으로 수조 달러 규모의 자본 파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글로벌 성장 동력의 상실까지 이어질 수 있다. 2024~2025년 미국 경기 호황을 견인한 주요 요인은 AI 투자였다. 관련 투자가 급격히 축소되면 글로벌 성장률에 강력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AI 투자 둔화는 건설, 전력, 반도체 장비 등 주변 산업의 수요 위축으로 파급돼 제조업 경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한국경제에도 직격탄글로벌 주식 시장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최근 미국 S&P500 지수 상승은 AI 관련주에 의존해왔다. 거품 붕괴 시 주요 지수의 급락과 자산 효과 감소로 소비·투자 심리 위축이 불가피하다. 미국 투자사 뱅가드는 "AI 과열이 주식 시장 하방 리스크를 키운다"고 평가했다.

금융 시장에서는 회사채 시장의 신용 경색과 비은행 금융기관(NBFI)의 부실화 위험도 거론된다. AI 인프라 기업의 채권과 신용지표가 악화하면, 글로벌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이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업 전체의 차입 비용 상승 요인이 된다.

특히 규제가 느슨한 '그림자 금융'의 위험이 커질 전망이다. 최근 사모펀드(Private Credit)들이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거액을 대출해주는 사례가 늘었다. 경기 악화 시 이들의 부실화가 시스템 위기로 번질 위험이 있다. IMF는 지난달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GFSR)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의 레버리지 확대를 잠재 위험 요소로 지목했다.

미국 AI 인프라 위기는 한국 경제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은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AI 패러다임 변화 시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HBM은 더 이상 틈새시장이 아니다. HBM 수출은 지난해 한국 전체 반도체 수출의 18%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알고리즘 노후화로 AI 패러다임이 급격히 전환된다면 HBM 수요는 급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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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