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레이버트 "피지컬AI, 산업용은 곧 투입…가정용 휴머노이드는 10년 걸릴 것"

입력 2025-11-20 18:01
수정 2025-11-21 01:41

198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카네기멜런대의 작은 연구실. 한 발로 뜀박질하면서 균형을 잡는 1족 보행 로봇 ‘호퍼’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산업계 반응은 “도대체 이걸 어디에 쓰겠냐”였다. 당시만 해도 로봇은 공장 바닥에 고정된 ‘산업용 팔’이 전부였다. 다리 달린 로봇은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오는 상상 속 존재였다.

마크 레이버트 박사는 ‘휴머노이드’란 말조차 낯설었던 시대에 호퍼를 개발한 1세대 로봇 공학자이자 세계 최고 휴머노이드 기업 중 하나인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보스턴다이내믹스 창업자다.

‘보행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20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가정용 휴머노이드는 여전히 기술 난제가 많아 상용화까지 최소 10년은 더 필요하다”며 “당분간 로봇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가치가 있는 분야는 ‘산업 현장 점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주최한 ‘제13회 글로벌 미래기술 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평생 로봇 만든 사람” 레이버트 박사는 스스로를 “평생 로봇을 만들어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1977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생물을 모방한 보행 로봇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약 40년간 로봇 하나에 매달렸다. 1980년 카네기멜런대 교수로 부임해 가장 먼저 한 일도 로봇 연구실 ‘레그랩(leg lab)’을 꾸리는 것이었다.

이후 MIT로 자리를 옮겨 10년을 보낸 뒤 1992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세워 30년 넘게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네 발로 걷는 로봇개 ‘스폿’과 양팔로 물구나무를 서는 ‘아틀라스’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금은 2022년 현대차그룹이 설립한 ‘로보틱스&AI 연구소(RAI)’에서 일하고 있다. ◇“가정용 로봇 상용화 10년 더 걸릴 것”레이버트 박사는 로봇의 상업적 가치가 가장 큰 분야로 플랜트와 공장, 발전소를 돌아다니며 설비 상태를 살피는 산업 현장 점검을 꼽았다. 열·진동·소음·영상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수집해 사람 눈으로 놓치기 쉬운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세운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 스폿을 투입해 품질 검사 등을 맡기고 있다.

그는 “당분간 피지컬 인공지능(AI)이 돈을 버는 쪽은 산업 점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런 종류의 로봇이 먼저 보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거지와 청소 등 집안일을 해주는 가정용 로봇에 대해선 “가정용 휴머노이드는 기술 난제가 많아 상용화까지 최소 10년은 더 필요하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집은 공장에 비해 환경이 무질서해 물체 조작과 균형 제어 등 기술을 실현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레이버트 박사는 미국·중국·유럽의 테크기업 및 완성차 업체들이 일제히 휴머노이드 시장에 뛰어들어 ‘로봇 패권’을 다투고 있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언론은 미국과 중국, 유럽이 서로 경쟁한다고 쓰지만 이걸 경쟁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며 “진정한 로봇 경쟁은 개발자와 물리법칙 사이에서 벌어진다”고 했다. 그저 그런 로봇을 만드는 기업끼리 경쟁하는 건 무의미할 뿐이고 로봇이 미끄러운 바닥에서도 균형을 잡는 것과 같은 물리적 난제를 개발자들이 풀 수 있느냐가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중국 유니트리와 유비테크 등이 사족보행 로봇을 내놓은 것에 대해 “스폿의 경쟁력은 네 발로 걷는 동작 자체가 아니라 응용 소프트웨어, 로봇 유지·보수 체계, 공장에서의 활용 능력 등을 통합해 한꺼번에 제공하는 데 있다”며 “이 모든 조각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고성능 보행 로봇을 가르는 진짜 차이”라고 말했다. 중국 휴머노이드가 뛰어난 하드웨어 성능은 갖췄지만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통합 운영능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의미다. ◇“피지컬 AI 경쟁력, 스타트업이 좌우”레이버트 박사는 피지컬 AI의 미래와 관련해 “대규모 데이터를 활용해 로봇의 행동과 지각을 통째로 학습시키는 데이터 기반 기법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신뢰도와 안정성은 아직 사람이 설계한 시스템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데이터에 의존해 센서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부터 로봇 행동까지 전 과정을 한 번에 학습시키는 방식보다 인간이 설계한 구조와 데이터 기반 기법을 결합하는 모델이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신라호텔에서 ‘AI×로보틱스: 초거대 생태계의 탄생’을 주제로 열린 제13회 글로벌 미래기술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의 피지컬 AI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정부 지원, 특히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