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언 칼럼] 선의만으로 '탈탄소' 가능한가

입력 2025-11-20 17:37
수정 2025-11-21 00:18
기후 위기 대응은 많은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흔히 말하는 탈탄소, 탄소중립, 넷제로(Net-Zero)는 모두 같은 의미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실질적인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선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대규모 투자 비용이 발생할뿐더러 유럽 등의 사례를 볼 때 태양광·풍력발전 등 전면적인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기료 부담도 사회 전체적으로 증가한다. 더 강하게 대응하면 더 큰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통하는 온실가스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유지 성격을 띠고 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주인 없는 공유지가 결국 황폐해지는 것처럼 온실가스도 그런 속성을 지닌다. 과거에는 산업화를 먼저 이룬 유럽과 미국이 주된 배출국이었다면, 지금은 미국 외에 중국 인도 등 후발 산업국이 엄청난 탄소를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탄소 배출 최상위국 중 어느 나라도 온실가스라는 공유지 관리의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탈탄소에는 국가적 부담이 따르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은 다른 나라들과 공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얼마 전 유엔총회에서 “기후변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기극”이라고까지 말했다.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유엔 주도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서에 서명했던 그다. 그렇다고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이 기후 대응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제각각인 세계 각국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유엔기구를 통해 탄소중립 아젠다를 주도해 온 유럽연합(EU)에서조차 이로 인한 산업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는 마당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는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에서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2018년 대비 53~61%)를 공개했다. 일본과 중국이 참여하지 않은 ‘탈석탄동맹(PPCA)’에 전격 가입하고 국내 석탄발전소 61기 중 40기를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이제 선진국으로서 담당해야 할 역할이면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문제는 탈탄소 급가속이 청구할 비용을 우리 주력 산업과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다. 앞서 공격적으로 탈탄소를 추진한 유럽, 그중에서도 제조업이 강한 독일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유럽기업연합에 따르면 탈탄소 정책은 EU 산업용 전기요금을 끌어올렸고 가뜩이나 중국 공세에 시달리던 알루미늄·시멘트·비료 등 전력 다소비 산업에 치명타를 가했다. 전기료와 높은 탈탄소 규제 탓에 독일 제조업의 해외 이전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총리는 녹색 정책이 지나치면 “산업 공동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자 석탄·가스 비중을 늘렸다.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1.4% 수준이다. 28%인 중국은 물론 12%의 미국과도 비교가 안 된다. 경제 규모도 마찬가지다. 공유지 성격이 강한 탈탄소 분야에서 우리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익을 고려하면 탈탄소 책무보다 국가 산업경쟁력을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 기존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 일자리도, 성장률 제고도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방위산업을 포함한 모든 첨단기술 분야에서 전력난이 심화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가 더 문제다. 탈탄소를 이념이나 정치의 관점에서 추진하는 게 아니라면 관련 정책을 가속화할 게 아니라 불안한 에너지 수급 계획부터 차질 없이 수립해야 한다. 일의 경중과 완급에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