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년 역사' 품은 토스카나 농가…페라가모가 되살린 세계문화유산

입력 2025-11-20 17:14
수정 2025-11-21 02:17

이탈리아 토스카나 남부의 완만한 언덕 위에 광활하게 펼쳐진 발도르차 국립공원. 이곳의 풍광에 매료된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캔버스에 그 아름다움을 옮겨다 놓곤 했다. 시에나 화파의 거장 중 한 명인 암부로조 로렌체티를 비롯해 많은 화가가 사랑한 곳으로 이름난 이곳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그 찬란함과 역사적 가치를 다시 한번 인정받은 것이다.

농업 지대이자 르네상스 시대 풍경의 원형과 미감을 오늘날까지 거의 그대로 간직한 이 지역의 경관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인간의 거주 흔적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리고 이 서정적인 풍경의 중심에는 900년 역사를 지닌 대규모 영지 ‘카스틸리온 델 보스코’가 자리 잡고 있다.페라가모 부부의 진정성과 애정이 깃들다
카스틸리온 델 보스코는 포도밭과 와이너리, 유기농 텃밭, 요리 학교, 레스토랑, 18홀 프라이빗 골프장, 리조트 등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마치 하나의 마을과도 같은 이곳에 활기찬 분위기와 생기가 감돌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03년 이전까지 이 부지의 대부분 건물은 거의 폐허에 가까웠다. 오랜 시간 관리되지 않아 지붕이 없거나 건물 일부가 붕괴되는 등 심각하게 노후화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가능성을 엿본 이들이 있었다.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 페라가모 창업자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막내아들인 마시모와 키아라 페라가모 부부다.

이들은 2003년 5000에이커(약 600만 평)에 달하는 카스틸리온 델 보스코 부지를 매입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개인 소유 부동산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의 역사적 가치와 이야기에 매료된 이들은 마을과 11개 농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노베이션해 최고급 리조트로 바꿨다. 이 부지의 원래 모습이었던 농가로서의 역할도 다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지역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의 대표 생산지였다. 노후된 포도밭의 나무를 대대적으로 다시 심어 와인 생산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리조트는 글로벌 호텔 브랜드 로즈우드호텔그룹의 브랜드 포트폴리오 중 하나다. 현재 ‘로즈우드 카스틸리온 델 보스코’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리조트에서는 전통 와인 농가의 강점을 살려 토스카나 와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부지 내에 있는 포도밭과 테누타 프리마 피에트라 해안을 따라 토스카나 와인의 세계로 파고드는 여행을 제공한다. 현지 와이너리에서 와인 테이스팅 세미나는 물론, 매년 9월이면 수확 행사를 열어 투숙객에게 다양한 와이너리 투어를 제공한다. 시즌별 특별한 체험은 이곳만의 특징. 아이들은 조랑말을 타고 계곡으로 모험을 떠나거나 벌집을 내부에서 관찰하며 분주히 날아다니며 꿀을 만드는 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마구간에 물을 주고, 과수원을 거닐고, 장인 정신이 깃든 치즈를 맛보며 농장 생활의 일부도 체험할 수 있다.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고 사냥개들과 함께 산으로 트러플을 채집하러 떠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투어는 계속된다. 토스카나의 별 아래 천문학자의 가이드를 따라 경이로운 우주 세계에 빠져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물든다. 중심 광장에서는 수공예 작품을 선보이는 전통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따뜻한 뱅쇼, 핫초코, 구운 밤의 향기가 흘러나오고 성탄 캐럴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저글링 공연과 마술쇼, 캐리커처 아티스트의 그림이 이어진다. 마을 한가운데는 아이스 스케이트장도 마련된다.토스카나 라이프스타일로 재해석된 17세기 농가로즈우드 카스틸리온 델 보스코는 42개의 스위트룸과 11개의 독립 빌라로 구성돼 있다. 역사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토스카나 지역의 특별한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위트룸은 17세기 농가를 고급 빌라로 복원해 엔틱 가구와 지역 장인이 제작한 직물,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미는 등 지역의 유산과 역사를 기리는 디테일을 곳곳에 반영했다. 빌라 역시 17~18세기 토스카나 지역 농가를 리노베이션해 시에나 스타일의 색조와 수공예품, 고급 직물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췄다. 개인 온수 풀과 원목 화덕, 홈시어터, 개인 테니스 코트 등도 포함된다. 특히 빌라 주방은 피렌체 디자이너 리카르도 바르텔이 설계해 빌라마다 다른 콘셉트와 특색을 자랑한다. 키아라 페라가모와 토스카나 출신 디자이너 테레사 뷔르기서 산크리스토포로가 협업해 리조트 각 공간에 우아함과 따뜻함을 불어넣었다. 현지 문화유산과 자연색 팔레트를 반영한 가구, 도자기, 대리석, 골동품도 눈길을 끈다.

스파는 와인 저장고였던 곳에 자리했다. 자연 친화적 테마로 사우나, 스팀 배스, 휴식 공간, 프라이빗 정원을 갖췄다. 요리 경험은 두 곳의 레스토랑과 유기농 텃밭, 요리 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총괄셰프 마테오 템페리니가 지역 전통을 살리면서 현대적 변주를 가미한 요리를 선보인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리스토란테 캄포 델 드라고에서는 유기농 텃밭에서 따 온 신선한 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선보이고, 오스테리아 라 카노니카는 토스카나 전통을 살린 피자와 포카치아를 화덕에서 구워 내온다. 요리 학교에서는 이탈리아 전통 음식도 배울 수 있다고. 텃밭에서 재료를 선택한 뒤 전통 토스카나 요리와 이탈리아식 파스타, 소스, 피자 만드는 수업이 이어진다.

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