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AI 거품’ 논란을 딛고 사상 최고 실적을 갈아 치웠다. 4분기 매출 전망도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제시하며 최근 제기된 ‘AI 투자 과잉’ 우려를 잠재웠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 산업이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고 강조했고 실적 발표 직후 엔비디아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5% 넘게 뛰었다.
엔비디아는 11월 19일(현지 시간) 발표한 2026 회계연도 3분기(8~10월)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570억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데이터센터 매출은 512억 달러로 시장 예상치(491억 달러)를 상회했다. 지난해 3분기 대비 66% 증가한 수치다. 조정 EPS(주당순이익)도 1.30달러로 컨센서스(1.25달러)를 뛰어넘었다.
이 같은 실적 호조는 AI 수요가 급증하고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 수요가 확대된 결과로 해석된다. 젠슨 황은 “최신 GPU인 블랙웰 판매량은 차트에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클라우드 GPU는 품절 상태”라며 “우리는 AI의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최신 블랙웰은 3분기 실적을 이끌었다. 최신 칩인 ‘GB300’이 ‘GB200’을 넘어 블랙웰 전체 수익의 약 3분의 2를 차지했다는 설명이다. GB300은 엔비디아 블랙웰 시리즈에 속하는 B300 칩을 사용한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AI 프로세서 중 하나로 평가된다.
엔비디아는 이날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AI 업체 xAI와 함께 500MW(메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투자 계획도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지원하는 AI 기업 휴메인(Humaine)과 함께 진행한다. 이를 포함해 AWS, ARM, 앤트로픽 등과 파트너십 계약을 통해 최대 500만 개의 GPU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젠슨 황은 “AI 생태계는 급속히 확장 중이며 더 많은 새 모델 개발사, 더 많은 AI 스타트업이 다양한 산업과 국가에서 등장하고 있다”며 “AI는 모든 곳에 침투해 일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 이후 다른 AI 반도체 제조사들의 주가도 상승했다. 브로드컴과 대만 세미컨덕터는 애프터마켓에서 7% 이상 상승했고 AMD는 6% 이상, 오라클은 5% 이상 뛰었다. 기술주 우려에 하락했던 뉴욕증시 3대 지수도 다시 상승으로 마감했다.
한국 증시에도 훈풍이 불었다. 코스피는 다시 4000선을 회복했다. SK하이닉스는 20일 장중 5% 넘게 올랐다 1.6%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고 삼성전자는 4% 넘게 뛰며 10만전자로 복귀했다.
엔비디아 실적발표 이후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믿음이 다시 생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AI가 수요 구조를 바꾸면서 산업의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설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고 가격 하락으로 사이클이 꺾이던 시대는 저물고 AI 인프라 투자로 인한 구조적 수요가 장기 호황을 이끄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2023년 이후 매년 ‘완판 상태’가 이어지고 향후 5년간 연평균 30%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며 “범용 제품인 고용량 DDR5 출하량도 전분기 대비 2배 이상 늘었고 낸드에서도 가격이 비싼 기업용 SSD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이 올해 42조원(증권사 전망치 평균)에서 2026년 71조원으로 급증한 이후 2027년에도 70조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올해 37조원대에서 2026년 76조원대로 두 배 넘게 뛸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 실적을 통해 AI 인프라 투자가 버블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관련주인 대원전선(17.96%), LS ELECTRIC(6.53%), 가온전선(6.01%), 대한전선(4.78%), HD현대일렉트릭(4.09%) 등 전선주 역시 급등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