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배송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바뀐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4년 쿠팡이 구매한 상품을 다음 날 집 앞으로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내놓으면서다. ‘로켓배송’이다.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한 상품을 하루 만에 받아볼 수 있게 되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더 이상 번거롭게 대형마트를 찾아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쿠팡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쿠팡의 ‘배송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비스는 더욱 진화했다. 쿠팡은 이용자가 급증하며 벌어들인 돈을 물류망 구축을 위한 투자 확대에 썼다. 그 결과 전날 밤 주문한 상품을 이른 아침 배달해주는 일명 ‘새벽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새벽배송은 현재 많은 이들이 누리는 일상이 됐다.
이렇게 탄생한 새벽배송이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새벽배송 서비스를 전면 금지하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다. 심야 근로를 없애 택배기사들의 과로를 막자는 취지다. 이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한편, 일각에선 이를 두고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외면한 이기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 10월 22일이다. 이날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택배 사회적대화기구’ 회의가 열렸다. 배송 택배기사 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쿠팡, 컬리, CJ대한통운 등 주요 유통업체와 노동조합, 정부 관계자 등이 모인 자리였다.
회의에서 민주노총은 택배 노동자의 수면·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밤 12시~오전 5시 사이 초심야 배송을 금지하자고 제안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골자는 오전 0시부터 5시까지 심야 배송을 금지하고 오전 5시 출근과 오후 3시 출근 2개 조에 주간 배송을 맡기는 것이었다. 이후 정치권과 노동계 등을 중심으로 새벽배송 규제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새벽배송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건 이번 사안을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쿠팡 등 이커머스 멤버십 가입자 등을 기준으로 추산되는 새벽배송 이용자 규모는 약 2000만 명에 달한다. 국민 절반가량이 이를 이용하는 보편적인 서비스다.
민주노총도 이런 논란을 예상치 못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배송을 멈추자는 제안을 띄운 것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사고 때문이다. 새벽배송 시장 자체의 규모가 커진 이면에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꾸준히 증가하는 산업재해다.
민주노총은 늘어나는 이용자 수만큼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자료에 따르면 새벽배송 산재의 경우 2019년 10명에 불과했으나 2023년 151명으로 14배 증가했다.
예컨대 쿠팡의 경우에도 최근 새벽배송 기사가 사망 전 주 6일 동안 새벽배송을 하면서 73시간 이상 일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원청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직원의 “달려주십쇼”라는 지시에 “개처럼 뛰고 있다”고 답한 카톡 내용이 퍼지며 안타까움을 샀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새벽배송 시스템은 주간(오전 8시 반~오후 8시), 야간(오후 9시~오전 7시) 등 2개 조로 구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오전(오전 5시~오후 3시), 오후(오후 3시~자정)로 재편해 새벽 내내 일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대로 새벽배송을 금지했다가 애꿏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새벽배송 서비스가 금지되면 소비자는 늦은 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다음 날 아침 상품을 받아 보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소비자들만 피해 볼 수도”이를 우려해 새벽배송 금지를 막아달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최근 등록된 ‘새벽배송 금지 및 제한 반대에 관한 청원’ 글의 경우 5일 만에 1만 건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이 청원에서 두 자녀를 둔 맞벌이 주부라고 밝힌 청원인 최모 씨는 “저희 부부와 같은 맞벌이는 장 보는 것도 새벽배송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새벽배송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새벽배송 관련 일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물류센터 직원에게 새벽배송은 삶의 터전이다.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
민주노총이 보호하겠다는 배달기사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배달기사는 “교통 체증이 덜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배달기사들이 새벽배송을 선호한다”고 했다.
실제로 쿠팡의 직고용 배송기사 노조인 ‘쿠팡친구 노동조합’은 민주노총의 입법 추진을 “민주노총 탈퇴 사업장에 대한 보복”이라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쿠팡노조는 2023년 11월 조합원 93%의 찬성을 얻어 민주노총을 탈퇴한 바 있다. 당시 쿠팡노조는 “정치활동에 대한 요구를 못 참겠다”, “조합원 권익보다 산별노조의 여러 활동 참여 요구가 잦았다” 등의 주장을 했다.
새벽배송 금지가 토종 이커머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쿠팡은 지난 10년간 원활한 새벽배송을 위해 물류센터 건설 및 설비 투자, 배송기사 채용 등에 6조원 넘게 투자했다. 내년에는 3조원을 추가로 투입해 2027년에는 익일 배송이 가능한 지역을 전국으로 넓힌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이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컬리도 마찬가지다. 상장을 준비 중인 이 회사는 새벽배송이 주력 서비스다. 새벽배송을 금지하면 샛별 컬리의 상장 계획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찬반 논란이 팽팽한 가운데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린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동자가 돈 때문에 안전을 포기하니 새벽배송을 막자는 건 자유선택권 침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현재 물류 프로세스 전반에 자동화가 진전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물류 과정에서 사람의 역할도 로봇을 사용하고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문제해결을 하는 쪽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새벽 시간은 ‘낮에 일할 사람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역할을 위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이를 지지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소비자들이 아침에 정말 필요한 상품들만 새벽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새벽배송 금지는 하지 않더라도 이번 논쟁을 계기로 택배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존재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