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기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내림세를 보이던 산지 쌀값이 한 달 만에 다시 상승 전환했다. 일선 농가들이 쌀값 상승에 대한 기대로 햅쌀 출하를 늦추면서 공급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쌀값 지지를 위한 정부 정책도 이 같은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15일 산지 쌀값은 20㎏당 5만6998원으로, 지난 5일(5만6954원) 대비 0.1%(44원) 상승했다. 산지 쌀값은 매달 5일·15일·25일 조사해 발표한다. 산지 쌀값은 작년 11월 15일부터 줄곧 오르다 11개월만인 지난달 15일 5만8258원으로 전 조사(6만1988원) 대비 6%(3730원) 급락하면서 상승세를 멈췄다. 이어 지난달 25일(-1.5%), 이달 5일(-0.8%)에도 하락세가 계속되다 이번 조사에서 상승률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올해 쌀값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격리와 벼 도정수율(벼 무게 대비 쌀 무게 비율) 하락이 맞물리면서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산지 쌀값은 올해 1월 5일 4만6713원에서 지난달 5일 6만1988원까지 오르면서 10개월 만에 32.7%(1만5275원) 뛰었다. 산지 쌀 가격이 6만원을 넘긴 것은 현재 형태로 통계가 작성된 2017년 이후 처음이다.
당초 정부는 수확철을 맞아 쌀값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쌀은 구조적인 공급 과잉 상황인 만큼, 햅쌀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리면 일시적 공급 부족도 해소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올해 내내 쌀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데도 비축미를 시장에 ‘방출’하는 대신 쌀을 빌려주고 햅쌀로 돌려받는 ‘대여’ 방식을 선택한 이유다.
실제로 올해 쌀 생산량은 예상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과잉이다. 국가데이터처는 지난 13일 올해 쌀 생산량을 353만9000t으로 확정했다. 일조량 부족 등으로 지난달 예측치(357만4000t)보다 3만5000t 줄었지만, 여전히 수요량을 13만t 웃돈다. 지난해 초과 생산량(5만6000t)보다도 두 배 넘게 많다.
그런데도 산지 쌀값이 다시 상승세로 전환된 것은 농가의 기대 심리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값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농가가 늘면서 햅쌀 출하 물량이 줄어 쌀값 안정 속도가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쌀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쌀을 빌렸던 민간 도정 업체들은 올해 햅쌀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실제 쌀 수요가 예상보다 많을 것이라 보는 농가도 많다”고 했다.
정부의 시장격리 정책도 쌀 가격을 버티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농식품부는 올해 초과 생산량을 16만5000t으로 예상되면서 이 중 10만t을 우선 격리하기로 했지만, 실제 초과 물량은 13만t으로 줄었다. 시장격리 물량을 반영하면 시중에 풀리는 초과 공급량은 3만t 수준에 그친다.
산지 쌀값 강세가 이어지면서 소비자 가격도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전날 쌀(상품) 소매가격은 20㎏당 6만3592원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일 기록한 고점(6만8435원)에 비해선 5000원가량 낮아졌지만, 여전히 지난해(5만4583원)보다 16.5% 높고, 평년(5만5609원)보다도 14.4% 비싸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