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일가가 법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미등기임원으로 활동하며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강화됐지만, 총수일가가 규율이 느슨한 미등기임원 직위를 활용하면서 감시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등기' 총수일가, 사익편취 기업에 절반 1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상장사 비율은 1년새 23.1%에서 29.4%로 뛰었다. 총수일가 1인당 평균 미등기임원 직위는 1.6개였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54.4%)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몰려 있었다.
공정위는 "미등기임원은 법적 책임과 의무가 상대적으로 약해 실질적 통제가 어렵다"며 "상법이 이사의 책임을 강화한 상황에서 총수일가의 미등기임원 증가가 제도 취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익편취 규제 계열사에 미등기임원 비중이 높다는 점에 대해 "감시 공백 속에서 권한이 행사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총수일가를 견제할 장치인 사외이사 비중은 올라가고 있다. 상장사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51.3%로 과반을 차지했다. 현대백화점·SK·한진·KT·카카오·한솔 등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사외이사 비율이 높고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가 적을수록 원안 가결률이 낮았다"며 사외이사의 견제 효과가 일정 부분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사외이사 비중 확대됐지만…견제 효과 제한적하지만 실질적인 감시 기능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의 99% 이상이 원안대로 통과됐고, 수정되거나 부결된 안건은 0.38%에 그쳤다. 최근 5년 새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총수가 있는 집단은 사외이사 비율과 평균 사외이사 수가 낮고, 원안 비가결률도 더 낮아 이사회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사회 내 위원회 운영도 회사별 편차가 컸다. 비의무 대상 기업에서도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 설치가 확산됐고, 보상·내부거래·ESG위원회는 상장사의 절반이 운영 중이었다. ESG위원회는 최근 5년간 설치 비율이 17.2%에서 57.3%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총수 있는 집단에서는 보상위원회·감사위원회 설치 비율이 낮아 총수 일가 보수나 내부통제를 감시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수주주권 제도 역시 확대되는 추세지만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집중투표제의 경우 대부분의 회사가 정관에서 배제해 실제 활용 사례가 거의 없다. 전자투표제도 도입률은 88%에 달하지만 소수주주의 실제 의결권 행사 비율은 1%대에 머문다. 공정위는 "소수주주권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올해부터 시행되는 집중투표제·전자주총 의무화가 지배구조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