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9일 13: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순항하던 국내 1위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 작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매각 대상을 놓고 주요 주주인 손화자 씨와 조갑주 전 대표 측 의견이 엇갈리면서다. 본입찰까지 마친 상황에 매각 대상이 불분명해지자 인수 후보들도 혼란에 빠졌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조 전 대표는 이지스엑스자산운용, 이지스투자파트너스, 이지스아시아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건으로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에 동의하고, 최대주주인 손 씨 측과 지분 매각 위임 계약을 맺었다. 조 전 대표는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후 3개 자회사를 인수한다는 계획으로 이런 딜 구조를 짠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대표는 가족 회사인 지에프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지분 9.9%를 더해 이지스자산운용 지분 약 12%를 보유 중이다.
최대주주인 손 씨 측도 매각 절차를 밟을 땐 조 전 대표 측의 이런 요구를 수용했다. 보유 지분이 12.4%에 불과한 손 씨 입장에선 주요 주주들의 지분을 모아 확실한 경영권을 매각해야 프리미엄을 더 받을 수 있는 만큼 조 대표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손 씨 측은 3개 자회사를 제외하고도 지분 100% 기준 이지스자산운용의 몸값을 1조원 이상으로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손 씨 측 의사결정은 그의 딸인 맥킨지 출신 김애미 투썸플레이스 사외이사가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손 씨 측 예상과 달린 인수 후보들은 3개 자회사가 매각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3개 자회사가 얼마나 내실 있는 자회사인지 여부를 떠나 조 전 대표가 이들 자회사를 인수해 한국에서 부동산 자산운용업에 계속 몸담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지스자산운용 직원들이 조 전 대표를 따라 떠나면 3개 자회사를 기반으로 설립되는 조 전 대표의 회사가 직접적인 경쟁사가 되고, 인수자들은 껍데기만 사는 꼴이 될 우려가 있다. 매각 측이 인수 후보들에게 입찰 과정에서 3개 자회사가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손 씨 측은 매각 작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조 전 대표 측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조 전 대표 측은 애초에 매각에 동의하고, 지분 매각 위임 계약을 맺은 조건 자체가 3개 자회사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었던 만큼 이제와서 이를 포기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 주주인 둘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논란이 이어지면 매각 작업이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매도인 측 관계자는 "일부 계열사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하는 주주 간 합의가 있었던 건 맞다"면서도 "조 대표 등이 주요 결정을 최대주주 측에 위임해 주주 간 이견은 해결됐고, 인수 후보와 최대주주 간 세부 조건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본입찰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참여했다. 인수 후보들은 1조원 안팎의 인수 희망 가격을 적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보험사가 이지스자산운용을 품을 경우 독립계 운용사 특유의 공격적 자산 운용 기조에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외국계 자본으로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엔 거버넌스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