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주식 기대수익 더 높아"…환율 올라도 달러 쓸어담는 서학개미

입력 2025-11-18 18:01
수정 2025-11-24 16:13
작년 초부터 엔비디아와 테슬라 주식을 매달 50만원어치씩 사들이고 있는 직장인 홍모씨(31)는 최근 고환율에도 매수 규모를 20만원씩 더 늘렸다. 그는 “원화 가치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장기적으로 미국 주식을 사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국내 주식이 상승세지만 원화 기반이기 때문에 장기 투자 매력은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고환율 상황에서는 매수를 줄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 들어 해외 주식 순매수 강도를 되레 높이고 있다. 원화 자산 회피 심리와 국내 증시(국장) 불신,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 고환율이 해외 투자 부추겨1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순매수 금액은 68억1300만달러(약 10조82억원)를 기록했다. 월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달 코스피지수가 처음으로 4000선을 넘기며 급등했지만 서학개미들은 해외 투자 규모를 늘렸다. 국내 주식은 순매도했다. 국내 증시가 본격 상승하기 시작한 하반기 들어 13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최약체’가 된 원화 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커지자 해외 주식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1500원을 위협할 정도로 치솟았다. 글로벌 달러 약세 국면에서 원화 가치는 더 추락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9월 1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달러인덱스가 3.1% 오르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6.1% 급등했다. 같은 기간 엔·달러(4.6%), 유로·달러(-1.7%), 위안·달러(0.1%) 등의 변동폭과 비교해 원화 가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최광혁 LS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주식, 금 등으로 원화 자산 헤지(위험회피)를 하려는 심리가 계속되고 있다”며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미국 주식이 장기적으로 더 탄탄할 것이란 투자자들의 믿음이 강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서학개미 열풍이 계속되면 고환율이 일상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을 끌어올린 서학개미들이 원화 자산을 피하려고 해외 투자를 늘리면 다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인투자자의 달러자산 유출 속도가 둔화해야 환율 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은 ‘3배 ETF’ 법으로 금지증권가에선 달러와 미국 증시를 중시하는 개인투자자의 ‘투자 이민’이 구조적인 변화라고 보고 있다. 유동성이 대규모로 풀리면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통화 가치가 하락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3배짜리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등 고위험 상품이 해외 증시에만 상장돼 있는 점도 서학개미 열풍을 불러온 주요 배경 중 하나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국내 투자자는 단기간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해외 증시에서 레버리지·인버스 ETF, 밈 주식, 암호화폐 관련주 등 변동성이 높은 종목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테슬라의 하루 주가 수익률을 2배 따르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배 ETF’(TSLL)는 한국인 보유 비중이 47%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단일 종목 2배와 3배 이상 레버리지 ETF 상장이 관련 법으로 금지돼 있다.

홍콩계 투자은행 CLSA는 “한국인의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은 값비싼 부동산 가격 및 부의 불평등과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스피지수 4000시대가 열렸지만 개인투자자의 오랜 불신을 달래기엔 부족하다”며 “장기 주식 투자자를 위한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