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금융의 발전과 자금세탁방지제도의 명암 [태평양의 미래금융]

입력 2025-11-19 07:00
수정 2026-01-14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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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전 세계 금융당국이 자금세탁방지(AML, Anti-Money Laundering) 제도를 한층강화하고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에 따라 은행과 금융회사는 고객확인(KYC)절차를 강화하고, 의심거래 보고(STR)와 고액현금거래 보고(CTR)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불법자금의 흐름을 막고 금융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 취지와 효과는 명확하다.

문제는 이 제도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효과를 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금융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국가나 신흥국에서는 AML 규제 강화가 의도치 않게 금융소외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엄격한 개인확인 절차의 역설...금융 접근성 해치나 일부 아프리카, 동남아 국가에선 신분증이나 주소증명, 소득확인서 등 기본적인 고객확인 요건조차 충족하기 어려운 서민층이 많다. 이들은 공식 금융기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비공식 송금업자나 암거래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국가들에서 가상자산을 통한 자금이체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제도권 밖의 거래가 늘어나면 자금세탁 위험은 오히려 커진다.

국제 송금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선진국 은행들은 규제 부담과 평판 리스크를 이유로 위험도가 높은 국가와의 송금 채널을 축소하거나 아예 중단하는 경우가 잦다. 이른바 ‘디리스킹(de-risking)’ 현상이다. 그 여파로 정당한 해외 송금이 막히고, 일부 저개발국은 외화유입의 중요한 통로를 잃는다.

이처럼 자금세탁방지 제도이행의 강화는 국제금융 시장의 자금이동의 투명성을 제고한다는 목표를 향하지만, 한편으로는 금융 접근성을 해칠 위험을 안고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도 최근 들어 ‘위험기반 접근(RBA, Risk-Based Approach)’을 강조하며 각국의 금융 여건에 맞는 유연한 제도 운영을 주문하고 있다. 규제의 강도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위험의 크기와 성격에 맞게 세분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래의 차단이 아닌 위험의 관리로AML의 목적은 거래를 막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데 있다. 모든 거래를 잠재적 범죄로 의심하기보다, 거래의 성격과 위험도를 냉정히 구분해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핀테크, 가상자산, 디지털 금융 등 신기술 기반 산업의 경우, 기존 금융권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많은 핀테크 기업은 소액결제나 선불충전 등 위험도가 낮은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은행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내부통제 의무를 요구받고 있다. 이런 규제 환경에서는 중소 스타트업이 AML 시스템 구축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시장 진입 자체가 가로막힌다.

따라서 감독당국은 위험기반 접근의 원칙에 따라 업종과 거래 특성을 고려한 차등적 규제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액·저위험 거래에는 간소화된 고객확인 절차를 허용하고, 고액·고위험 거래에는 강화된 검증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금융 포용성과 AML 효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 될 것이다.

또한 신사업에 대한 AML 적용은 처음부터 일률적으로 강제하기보다 점진적 적용의 방식이 바람직하다. 혁신 서비스의 시장 진입을 허용하되, 일정 기간 위험을 관찰하면서 제도를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술 발전을 막지 않으면서도 AML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의 힘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자신원확인(e-KYC), 데이터 분석 기반 모니터링, 블록체인 추적 기술 등은 자금세탁방지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비용을 낮출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이상거래탐지 시스템은 중소사업자도 합리적인 비용으로 AML 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한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AML 제도는 금융거래의 문을 닫는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법자금의 유입을 막으면서도 혁신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남겨야 한다. 투명성과 포용성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달성해야 할 두 축이다.

금융의 신뢰를 지키되, 혁신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것 ?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AML 제도의 진정한 과제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법무법인 태평양의 미래금융전략센터(센터장: 한준성 고문)는 2024년 5월 출범하여, 금융권 디지털 혁신 가속화와 금융 기술 발전에 발맞춰 가상자산·전자금융·규제 대응·정보보호 등 금융 및 IT 분야 최정예 전문가들로 진용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