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무조건 써라"…420억 관세바우처 졸속운영 논란

입력 2025-11-18 11:18
수정 2025-11-18 11:20
정부가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응해 마련한 긴급지원바우처 대책을 놓고 졸속 행정 논란이 불거졌다. 올해 나눠준 수출바우처를 연말까지 상당수 소진하지 않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기로 하면서 수출기업이 필요한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하는 상황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긴급지원바우처 사업비로 424억원을 편성했다. 정부는 올해 미국 관세 정책에 피해를 보는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관세 대응 수출바우처 제도’ 마련했다. 중소·중견기업에 온라인 쿠폰 형태의 긴급바우처를 지급하고, 기업들은 바우처를 통해 해외 관세·법률 컨설팅 회사, 해외 물류법인 등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바우처 사업은 2025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847억원의 사업비를 마련했다. 정부는 올해 5~6월 말과 8~9월 말, 두 차례 나눠 바우처를 지급했고, 올해 말까지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급한 바우처 잔액이 연말에 15%를 웃돈 기업은 내년 긴급바우처 지원 때 불이익을 주거나 참여를 제한할 계획이다. 오는 9월 말에 지급받은 기업도 석 달 만에 바우처를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연말 소진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 바우처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미 관세협정이 이달 타결됐지만, 관세 협상이 미치는 파장은 내년에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만큼 기업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정작 바우처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내년 바우처 사업비(424억원)가 올해 추경 사업비(847억원)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이 같은 바우처 운영에 대해 "오는 9월 말 바우처를 지급받은 기업에 대해 올해 말까지 모든 서비스를 쓰도록 바우처를 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며 "사용기한과 조건 등을 보다 유연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세 대응을 위해 진행하는 긴급지원바우처 사업과 별도로 기존에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수출바우처 사업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현재 수출바우처는 산업부와 중소벤처기업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의 4개 부처에서 지원하고 있다. 관련한 내년 사업비는 3224억원으로 올해보다 107억원 줄었다. 이들 부처는 각기 다른 업종과 규모별로 나눠 지원에 나서는 만큼 중복 지원할 가능성이 적잖다.

산업부 바우처를 받은 기업 가운데 농업회사법인, 식품업체, 수산식품 업체 등 농식품·수산식품 기업이 포함된 만큼 농식품부·해수부 사업 대상과 겹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부처들은 수출바우처 선정 공고문에 ‘부처 중복선정 불가’ 문구를 넣고 서약서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해수부·농식품부의 경우 선정 이후 공문으로 중복선정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인 만큼 원천적으로 중복선정을 걸러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기부가 내년에 새로 도입하는 105억원 규모의 물류전용바우처의 경우 WTO 회원국의 ‘보조금 및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에 따른 ‘금지보조금’으로 분류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물류 전용 바우처는 특정 기업에 수출물류 비용을 지급하는 제도다. 산업부와 농식품부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2024년과 2025년에 각각 물류전용바우처를 폐지한 바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중기부는 WTO 협정 위반 소지가 있는 물류 전용 수출바우처 사업을 별도로 편성하는 것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