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도 못 썼는데…정책펀드 내년 예산 1.2조 늘린다

입력 2025-11-17 17:41
수정 2025-11-18 01:49
정부 부처들이 앞다퉈 조성한 정책 펀드가 제대로 소진되지 않는데도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책 펀드에 나랏돈을 추가로 투입하기 전 기능이 겹치는 펀드를 조정하고, 집행 실적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태펀드에 내년 예산 1.1조 투입17일 ‘2026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모태조합출자’ 펀드에 1조10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1년 전보다 3000억원 늘었다. 이 펀드는 2023년 정부 출자를 기반으로 1조4106억원 규모의 자펀드를 결성했지만, 지난 7월 기준 미투자 잔액(유보액)이 7943억원에 달한다. 3년간 투자를 진행했지만 절반 이상(56%)을 쓰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미래환경산업투자펀드’의 경우 2022년 조성한 자펀드 430억원 중 217억원(50.4%)이 아직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 2023년은 775억원 중 413억5000만원(53.3%), 2024년은 956억원 중 689억4000만원(72%)을 소진하지 못했다. 해마다 펀드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제대로 투자 집행이 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펀드의 내년도 예산으로 591억5500만원을 편성했다.

우주항공청에서 운영하는 ‘뉴스페이스투자지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2023년과 2024년 출자금 100억원과 120억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40억원과 42억5000만원만 집행됐다. 내년 예산은 1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이들 3개 펀드에 남아 있는 실탄은 총 2조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1조2592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통상 정책 펀드는 8년 기한으로 조성한다. 첫 4년 안에 투자처를 발굴하고 투자를 집행해야 나머지 4년 동안 투자사업의 가치를 높여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국내 한 사모펀드 대표는 “펀드 운용 기간 골고루 투자해야 성과를 제대로 낼 수 있다”며 “자금을 제때 투자하지 못하면 시간에 쫓겨서 투자 결정을 내리게 되고, 이에 따라 투자 성과도 부진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기부, 기후부, 우주항공청 사례에서 보듯 주요 정책 펀드의 집행 실적은 3년 차에도 50%를 밑도는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도 각 부처가 매년 정책 펀드 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펀드 예산을 확보해야 부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투자 분야 겹치는 ‘정책 펀드’ 수두룩투자업계에서는 투자 대상이 한정돼 있는데 특정 산업 육성을 위해 비슷한 정책 펀드가 신설되다 보니 집행 실적이 부진하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중기부의 중소기업모태펀드와 금융위원회의 반도체생태계펀드, 산업통상부가 운영하는 산단환경개선펀드 등은 투자 분야가 반도체·바이오·우주탐사·에너지 등으로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기존 펀드는 출자금의 투자 용도가 정해져 있어 인공지능(AI)이나 딥테크와 같은 새로운 분야에 투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 펀드의 투자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한 결과 집행 실적이 저조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150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국민성장펀드까지 실제 투자를 집행하면 투자 대상 중복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 관계자는 “펀드가 하나 만들어지는 순간 주관 부처는 ‘자기 사업’으로 간주해 예산, 투자 현황, 수익률 등 외부 평가를 꺼린다”고 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출자금 편성·집행과 정책 펀드의 투자성과를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신설펀드가 구주 인수 등의 방식으로 기존 펀드의 투자사업을 물려받는 방식의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정민/정영효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