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여섯 분기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미국 관세 인상에 따른 자동차 등 수출 부진 여파다.
일본 내각부가 17일 발표한 올해 3분기(7~9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속보치)은 전 분기보다 0.4% 감소했다. 연율 기준 -1.8%다. 이로써 작년 2분기 이후 다섯 분기 연속 플러스를 기록한 성장률은 올해 3분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수출이 1.2% 감소하며 두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미국 관세 때문에 자동차 수출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 소비도 1.6% 줄며 네 분기 만에 감소했다. 7월 대지진설에 홍콩인의 일본 방문이 줄어든 게 영향을 미쳤다.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는 0.1% 늘고 설비투자도 1.0% 증가했다. 기우치 미노루 경제재정상은 3분기 GDP에 대해 “일시적 감소 요인이 있었다”며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다는 인식에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4분기(10~12월) 경제성장률은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즈호리서치&테크놀로지스는 “대미 수출 감소는 GDP를 연간 0.2% 정도 끌어내릴 것으로 전망된다”며 “관세 영향이 장기화하겠지만 수출 전망이 크게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도 타결돼 4분기부터는 관세 충격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3분기 역성장을 근거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내각은 21일 결정할 종합경제대책 규모를 17조엔, 이를 뒷받침할 추경은 14조엔으로 짜고 있다. 코로나19 때인 2020회계연도를 제외하면 역대 최대 규모다.
다카이치 내각은 대담한 투자로 ‘강한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내년 여름을 목표로 ‘일본 성장 전략’을 세우고 있다. 기우치 경제재정상은 재정 확대, 금융 완화로 수요가 공급을 지속적으로 웃돌면 장기 성장률도 높아진다는 ‘고압 경제’를 지론으로 갖고 있다.
채권시장은 다카이치 내각의 ‘돈 풀기’에 경고음을 내고 있다. 이날 도쿄 채권시장에서 장기금리 기준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1.730%까지 치솟았다. 2008년 6월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재정 악화 우려에 채권 매도세가 확산하며 채권값이 하락한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재정 신뢰도 하락으로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 상승 압력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며 “경제대책이 오히려 국민 생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인당 GDP를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 평가지수로 비교하면 일본은 2009년 대만에, 2015년 한국에 추월당했다. 올해는 폴란드에도 뒤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히신문은 “고령화 영향도 있지만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지표에서 점차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재정과 사회보장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구 감소 영향이 본격화하는 2030년대 이후에도 연간 1%를 안정적으로 웃도는 성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 상태가 지속되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사히는 “성장 전략은 제2차 아베 신조 정권 이후 역대 정권이 간판으로 내걸고 다양한 대책을 내놨다”며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