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공동의 창작 문화를 조성하다

입력 2025-11-17 17:51
수정 2025-11-18 00:20
한국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공연 중 하나는 2024년 10월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다.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 때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를 수려하게 연주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바로 그다.

지난주 에세이에서 팝 음악, 웹툰, 게임 등에서 이뤄질 한국과 프랑스의 교류 계획을 말씀드렸다. 젊은 층의 관심을 끄는 계획이 정말 많다. 하지만 ‘정통’ 문화 협력이 여기에 가려져서는 안 될 일이기에 기존 협력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인 내년에 마침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의 개관 소식이 들려 무척 기쁘다.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 자리 잡을 미술관의 내부 설계는 저명한 건축가인 장미셸 빌모트가 맡았다. 이곳에서는 파리 퐁피두센터 근현대미술관 소장품 중심의 여러 전시회가 이어질 예정이다.

우리는 두 나라의 파트너십을 오랫동안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양국 젊은 예술가들을 함께 양성해 좋은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또한 같이 창작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부산시와 칸시가 협력해 2024년 9월 처음으로 한국 내 프랑스 작가 입주 공간인 ‘빌라 부산’을 조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벌써 3기 입주작가 활동이 진행 중인데, 매번 성공적이다. 경쟁이 치열한 공모 절차를 걸쳐 선발된 작가는 부산 홍티아트센터에 터를 마련한다. 작가는 3개월 동안 기획한 작품을 완성한 후 전시회를 개최하는데, 반드시 지역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야 한다. 영화인들이 모인 첫 번째 작가 팀은 부산에 남아 있는 한국전쟁의 흔적과 그 기억을 다뤘고, 조형예술가인 두 번째 작가는 부산의 마지막 해녀들을 주제로 삼았다. 사진 예술가인 세 번째 작가는 사회 저변의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이해 더 많은 문화 기관과 예술가들이 서로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다양한 도시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를 다루는 새로운 레시던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여행을 떠나는 일 그리고 다른 문화, 다른 방식, 다른 상상에 마음을 여는 일은 늘 결실을 본다. 김중업 건축가도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파리 작업실에서 많은 것을 터득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에 파리에서의 경험을 더해 귀국 후 한국에서 많은 걸작을 완성했다.

김중업 건축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주한 프랑스대사관저에서 사는 나는 행운아다. 로제 샹바르 초대 대사가 1962년 준공한 대사관 건축물은 신축 및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23년 재개관했는데, 여기에도 한국과 프랑스 건축사무소들이 함께 기여했다. 공동 창작을 협력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바로 그 정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