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마다 제각각…고무줄이 된 '실질적 지배력' 판단

입력 2025-11-18 17:43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어느 범위까지 노동조합법 상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기업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개정 노동조합법 제2조는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를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이라고 부른다. 즉,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를 노동조합법 상 사용자로 간주하여 단체교섭의무를 부과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가 노동조합법 상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부담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표지가 된다.

그런데 현행법은 실질적 지배력과 관련하여 추상적으로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 지배력은 이른바 ‘불확정 개념’으로서 법원의 판례를 통해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흔히 리딩케이스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서울고등법원의 CJ대한통운 판결(서울고등법원 2024. 1. 24. 선고 2023누34646 판결)이다. 해당 판결의 1심 판결인 서울행정법원 2023. 1. 12. 선고 2021구합71748 판결은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는 사업주가 근로조건인 교섭요구사항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결정하거나, 근로자가 해당 근로조건을 사업주의 의사대로 또는 정해진 대로 복종하여 따를 수밖에 없어 사업주가 해당 근로조건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러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는 원고와 집배점의 관계, 집배점 택배기사의 업무가 상시적·필수적인 업무인지, 원고의 사업체계의 일부로 편입됨으로써 근로조건을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원고의 지위가 지속적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후 이어진 한화오션(서울행정법원 2025. 7. 25. 선고 2023구합55658, 56231 판결) 및 현대제철(서울행정법원 2025. 7. 25. 선고 2022구합69230 판결)에서는 이를 좀더 구체화하여 “원고 회사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하여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교섭 요구 의제에 대하여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노무가 원청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이고 사업체계에 편입되어 있는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노동조건 등을 원청과의 단체교섭에 의해 집단적으로 결정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있는지 여부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위와 같은 판단을 함에 있어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업무가 이 사건 사업장에서 행하여지는 원고 회사의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무방식과 이에 대한 원고 회사의 직·간접적 관여 정도, 원고 회사와 사내하청업체의 관계, 사내하청업체의 경제적 독립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와 같이 기존의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례들은 “교섭 요구 의제에 대하여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원청이 하청에 대한 거래상의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려하여 왔다. 즉, 법원은 단순히 해당 교섭사항과 관련하여 원청이 관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원청이 하청에게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있어야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법원의 태도는 “지배”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면세점·백화점의 입점업체 판매사원 사건(서울행정법원 2025. 10. 30. 선고 2024구합72896 판결)에서 법원은 조금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해당 판결에서 법원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되는지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로조건 등에 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이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사업주가 반드시 원사업주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을 것만을 요건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실질적 지배력의 유무는 참가인들과 이 사건 입점업체 및 원고 조합원 근로자들 사이에 형성된 노무제공관계의 전체적인 모습에 기초하여 참가인들의 거래상 명백한 우월적 지위 유무에 따라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각 의제와 연관되는 각각의 근로조건별로 따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위와 같은 전제 아래 해당 판결에서는 원고 조합원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근무일과 근무시간은 근로계약 주체인 이 사건 입점업체가 작성하는 근무일정표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고, 참가인 백화점·면세점의 영업일, 영업시간 자체에 직접 연동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참가인 백화점·면세점의 영업일, 영업시간을 지정·변경하는 것은 원고 조합원 근로자들의 근무일, 근무시간 관련 근로조건에 적어도 일정한 수준의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의제에 관한 백화점·면세점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인정하고 있다.

즉, 위 판결은 원청이 하청에 대해 지배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에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면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도급계약은 자신의 업무를 타인에게 위탁하는 것으로 도급계약에는 필연적으로 도급인의 지시와 관여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면세점·백화점 판결의 기준이 법원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면, 거의 모든 원청은 하청노조와 교섭을 해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위 판결은 노란봉투법과 관련하여 사용자의 인정 범위가 무제한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각 법원의 성향에 따라 사용자의 인정 범위가 고무줄처럼 적용되어 버린다면, 노동조합은 묻지마식의 단체교섭요구를 해 올 것이고 사용자는 단체교섭을 해야하는지에 관한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법적인 분쟁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즉, 노란봉투법은 노사간의 자율적인 대화의 장인 단체교섭을 모두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노사간의 분쟁을 야기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산업평화를 해치고 국민경제의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제 시행일까지 몇 달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와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보완책 마련을 위한 노사정간의 대화가 시급하다. 만약 시간이 부족하다면 노란봉투법의 시행을 한 차례 연기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이 정부여당의 입장과 같이 노사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대화촉진법이라면, 노란봉투법의 시행과 관련해서도 노사간에 충실한 대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노사간 힘겨루기를 할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