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읽는 ‘한국 현대 서정시’

입력 2025-11-14 21:09
수정 2025-11-15 09:48

한국 현대 서정시인 36명의 작품을 한국어와 영어로 함께 수록한 『Contemporary Korean Lyric Poems』(우리시움 펴냄)이 출간됐다.

이 시집에는 영문학자인 여국현 시인이 3년간 웹 매거진 <시인뉴스포엠>에 ‘여국현 시인의 우리시를 영시로’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

수록된 시는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의 작품 2편씩 모두 72편이다. 이를 통해 한국 시단의 흐름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에 대한 외국 독자들의 관심을 폭넓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고두현의 ‘늦게 온 소포’는 전통적 정서의 백미를 보여주고, 김완의 ‘문의 상대성’은 삶의 일상성 속에 투사하는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권지영의 ‘세월호 아이들을 그리며’와 김희정의 ‘골령골’ 연작, 맹문재의 ‘사북 골목에서’는 사회적 집단적 사건과 산업화의 그늘에 담긴 트라우마를 담아낸다.

계절의 순환을 인간적 감정으로 연결한 김정원의 ‘낙화’나 홍해리의 ‘가을 들녘에 서서’는 전통 서정의 면모를 드러내고 서숙희, 이송희 두 시조시인의 작품은 한국 현대시조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감각적인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시적 정서를 환기하는 정한용의 ‘툭, 잎이 지고’, 여국현의 ‘안개’, 서정성과 현실성의 시적 결합을 보여주는 고영민의 ‘봄의 정치’, 시 창작의 고뇌를 담은 나종영의 ‘물염의 시’, 김윤환의 ‘칼집’ 같은 메타시적 경향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이번 시집은 ‘한국문화(K-컬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시점에 ‘K-컬처’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한국어 시와 시인들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함으로써 한국문학의 국제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표4를 쓴 문학평론가 오민석 단국대 명예교수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있지만 필요성에 비해 규모가 작고, 한국문학의 번역 소개 과업이 민간의 개인들에게 맡겨져 온 현실에서 이 책은 참으로 소중하다”며 “진실로 시에 집중하고 혼신을 다해 시를 써 온 ‘진짜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대상으로 삼은 이 시집의 한글과 영역본을 대조하며 따라 읽다 보면, 현 단계 한국 시문학의 굵은 뼈대가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번역자 여국현 시인은 영어와 영문학을 오래 연구해 온 학자이자 시인으로 한국 시를 영어로 옮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며 “가장 적절한 번역자가 가장 적절한 시인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으니, 한국시의 풍요를 영어의 바람 소리와 함께 들어 보면 하모니카의 두 겹 바람구멍처럼 이중 언어의 시가 당신의 가슴을 아름답고 시원하게 적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국현 시인은 “한국어의 결과 맛을 살리면서도 영어권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번역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인환 시선집(Park In Hwan’s Collective Poems)』(2021)과 임보 시인의 『산상문답(Questions And Answers on The Mountain)』(2022), 박소원 시인의 『아, 아(Ah, Ah)』(2024) 등 한국시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번 시집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사업으로 출판됐다. 표지 디자인은 안팎의 색상을 달리했다. 겉표지를 열면 은은한 안개를 머금은 산 능선 풍경의 옅은 블루톤 속표지가 펼쳐진다.

수록 시인은 다음과 같다. 강민숙, 고두현, 고영민, 권선희, 권지영, 김명리, 김옥종, 김완, 김용만, 김윤현, 김윤환, 김정원, 김희정, 나종영, 맹문재, 서숙희, 손세실리아, 손창기, 손현숙, 신휘, 여국현, 여연, 여영현, 유은희, 유종, 이소암, 이송희, 이지담, 장우원, 전선용, 정한용, 주영국, 천지경, 최라라, 허향숙, 홍해리(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