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건조는 한국서, 연료는 미국산…'30년 숙원' 첫발 뗐다

입력 2025-11-14 18:30
수정 2025-11-15 01:52

한·미 양국이 14일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우리 군의 30년 숙원인 핵잠 건조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서도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양국 간 관련 협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형 핵잠’ 윤곽 드러나
이날 발표된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핵 잠수함 건조 장소는 국내로 가닥이 잡혔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핵 잠수함을 어디에서 건조할지 결정이 됐냐’는 질문에 “(팩트시트에 적시하지 않았으나)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이뤄졌다”며 “그래서 건조 위치는 일단 (국내로) 정리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배(잠수함)는 여기(국내)에서 짓고, 원자로도 우리 기술로 할 수 있다”며 “미국으로부터 연료를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사업 방식은 국산 ‘한국형 핵 잠수함’ 건조가 유력하다는 얘기다. 군당국은 배수량 5000t급 이상 핵 잠수함을 2030년대 중반 이후 4척 이상 건조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핵 잠수함 건조는 북한 등의 잠수함 전력에 대응한 지속 감시·추적 능력은 물론 한·미 해군 연합방위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합의 이후 한·미 양국은 법적 제한을 풀기 위해 추가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한·미 원자력협정은 평화적 목적에 국한됐기 때문에 핵잠 원료 확보를 위해선 한·미가 별도 협정을 맺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한국 원자력 잠수함은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밝힌 만큼 한국에서 건조하는 문제를 놓고 추가 협의가 있을 수도 있다. 미국 의회 승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등의 관문도 넘어야 한다. ◇한·미 ‘원자력 동맹’ 가시화양국은 팩트시트를 통해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2035년까지 적용되는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이 20% 이내의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하려면 미국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양국은 농축·재처리 문제에 대해 큰 틀에서만 합의했을 뿐 실제 이행을 위해선 복잡한 후속 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 실장은 “농축·재처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과 후속 협의해 기존 협정을 조정해야 한다”며 “방향이 정해졌고 양측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후속 협의는 이를 어떻게 이행할지 쪽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팩트시트의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라는 문구를 놓고 미국이 협정 개정에 부정적인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김건 국민의힘 의원이 이같이 지적하자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저희는 (원자력 협정) 개정을 염두에 두고 미 측과 사안을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협상을 통해 한국이 핵연료 처리·가공 권한을 확보한다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추가 핵연료를 확보하고, 폐기물 처리 부담도 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원자력 발전소들은 사용후 핵연료를 쌓아놓기만 한 탓에 포화 상태에 가까워졌다.

이번 한·미 합의는 양국 조선업과 원자력 에너지 공동연구 등 산업·기술 협력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구연 강원대 교수는 “미국의 한국 원자력추진잠수함(SSN) 건조 승인과 핵연료 협력이 팩트시트에 명시된 것은 양국이 경제, 기술, 안보 분야에서 협력관계가 더욱 밀접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현일/배성수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