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재산세가 1%에 달하는데 우리나라는 부동산 보유세가 낮고, 양도세는 높아 매물 잠김 현상이 크다"라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난달 16일 발언을 전후로 보유세 인상의 군불을 때는 듯한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부터 종합부동산세 위헌 청구 소송을 이끄는 이재만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사진)은 19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구 부총리의 국제 비교 사례는 팩트부터 틀렸다고 지적했다.
구 부총리가 언급한 통계는 조세재정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주요국의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 비교'를 인용한 것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로 미국(0.99%), 일본(0.52%) 등 주요 8개국 평균(0.54%)을 크게 밑돈다는 내용으로 발표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는 단골 논거로 사용된다.
주요국의 부동산 실효세율은 부동산 보유세를 민간 부동산 시가총액으로 나눠서 구했다. 이 같은 방식은 같은 조세재정연구원의 송경호 연구위원이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잘못된 방식'이라고 지적할 정도로 전문가들 사이에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간 부동산 시가총액을 구하는 기준이 나라마다 제각각이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가운데 민간 부동산 시가총액 통계를 공개하는 나라는 15개국뿐이다. 통계를 공개하는 나라들도 산출 방식이 저마다 달라서 결괏값이 천차만별이다.
면적이 한국의 98배와 77배인 캐나다와 호주의 토지가치가 우리나라의 43%와 58%에 불과한가 하면 3.4배 크기의 핀란드의 가치는 우리나라의 3%다. 우리나라 땅을 팔면 캐나다와 호주를 한꺼번에, 핀란드는 33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주만수 한양대 교수는 "이처럼 기준이 통일되지 않은 수치를 근거로 산출한 보유세 실효세율을 국제 비교에 사용하기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OECD는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비교할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율을 따진다. 2021년 한국의 GDP 대비 부동산 보유세율은 1.2%로 OECD 평균(1.0%)을 웃돈다. 2010~2021년 OECD 평균 보유세율이 사실상 제자리걸음(0.02%포인트 상승) 한 반면 한국은 0.5%포인트 오르면서 보유세 부담이 큰 나라에 속하게 됐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보유세가 낮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닌 만큼 보유세를 올리려는 움직임도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전 청장은 특히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하는 종합부동산세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의 모든 국가가 부동산 보유세로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에 비례해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세를 부과한다. 종부세는 3억원 이하(0.5%)에서 94억원 초과(2.7%)까지 누진 구간이 7단계(2주택 이하 기준)에 달한다.
이 전 청장은 "부동산 가격에 따라 세율이 가파르게 치솟는 누진세 체계 때문에 일부 납세자의 종부세 부담은 보유세 부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영국과 프랑스, 일본을 훌쩍 뛰어넘는다"며 "보유자의 납세 능력을 넘어 결국엔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질식적 과세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상당수 국가는 '경제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준' 또는 '사회적 연대에 부합하는 합리적 수준'을 넘어서는 조세 체계를 몰수적 과세로 규정하고,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