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회계법인 공인회계사들이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줄줄이 수사를 받고 있다. 동생이나 자녀를 직원으로 허위 고용하거나 배우자 명의 회사와 용역 계약을 꾸며 수천만원씩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인 관리 체계를 갖추지 않고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중소형 회계법인의 허술한 내부통제 실태가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인회계사 24명 무더기 수사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와 형사1·3·7부는 올해 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로부터 6개 중소형 회계법인 공인회계사 24명의 업무상 횡령 혐의 사건을 송치받아 이 중 회계법인 2곳의 7명을 기소하고 나머지 17명을 수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3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금감원이 경찰에 회계법인 관련 사건 수사를 의뢰한 첫 사례였다.
기소된 S회계법인 파트너(이사) A씨는 동생을 운전기사로 채용하는 내용의 연봉계약서를 작성한 뒤 회사에 제출해 2018년부터 5년간 7939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회계법인에서는 자녀가 기장 업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것으로 가장해 2020~2023년 19회에 걸쳐 4600만원의 허위 급여를 타낸 사례도 적발됐다.
용역계약을 맺고 회삿돈을 횡령하는 수법도 쓰였다. S회계법인 회계사 B씨는 배우자가 대표인 회사와 ‘세무조사 대응 자문’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꾸며 수수료 명목으로 4400만원을 빼돌렸다. D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C씨는 자신이 100% 소유한 페이퍼컴퍼니와 하도급 계약을 맺는 수법으로 비상장주식 매각자문 성공보수 5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신뢰 훼손 … 죄질 가볍지 않아”이들은 원래 성과급이나 인센티브 형태로 받았어야 할 금액을 미리 당겨 받거나,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런 횡령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회계사가 허술한 관리 체계를 악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면서 회계업계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중소형 회계법인의 특성상 이 같은 방식의 횡령이 장기간 관행처럼 이어졌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독립채산제 구조에서는 각 부서가 실적을 올리고 이를 해당 부서가 가져간다. 공통 부문인 내부통제 관련 부서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에선 2018년 신(新)외부감사법 시행 이후 금융당국이 기업과 회계법인 간 감사 계약을 지정해주면서 중소형 회계법인들이 영업 없이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지만 감사 품질과 내부통제 등 공적 책임을 강화하려는 자정 노력은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류경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0단독 부장판사는 지난 7월 1심에서 S회계법인 회계사들에 대해 “회계 투명성, 자본시장 신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계법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다만 피고인들이 수사 과정에서 횡령금을 모두 반환했으며 이런 범행이 중소형 회계법인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류병화/박시온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