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인사이트]
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은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미래를 이끌어 갈 아이들은 AI 시대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면 좋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지만 쉽사리 답을 구하기 어려운 주제다.
이 같은 고민은 투자에도 적용될 수 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인간이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면 펀드매니저들은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부활하는 액티브 투자
펀드매니저가 시장 대비 초과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시장에 ‘비효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발달로 시장의 모든 정보가 즉시 가격에 반영된다면, 펀드매니저가 어렵게 찾아낸 저평가 기회는 이미 시장 가격에 반영된 뒤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면 AI의 등장은 펀드매니저가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우량 기업·종목을 발굴하고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액티브 투자’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인 것만 같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시장(지수)을 그대로 따르는 ‘패시브 전략’은 저렴한 비용과 우수한 성과를 바탕으로 ‘액티브 전략’을 압도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AI의 등장은 액티브 투자에 대한 회의론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금융 시장에서는 예상과 달리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상장지수펀드(ETF)가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 들어 액티브 ETF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글로벌 전체 ETF 시장에서 액티브 ETF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상반기 28%까지 늘어 2019년에 비해 9배 가까이 성장했다. 또한 2025년 상반기 미국 시장에 신규 상장된 ETF 중 약 88%는 액티브 ETF가 차지할 정도로 액티브 전략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세계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은 전 세계의 액티브 ETF 시장의 운용자산(AUM)이 2025년 약 1.4조 달러에서 2030년 4.2조 달러로 3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 시장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시장은 단순히 금리, 환율, 기업 실적과 같은 데이터뿐만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공포, 기대,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요소들이 모두 영향을 주고받는다.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는 우위를 보일 수 있지만, 전례 없는 사건이나 인간 심리의 극단적인 변화를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인다.
패시브 쏠림 현상이 만든 비효율
패시브 전략의 과도한 쏠림 현상 그 자체도 시장의 비효율을 만들고 있다. 미국의 대형주로 구성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같은 시가총액 가중 지수 내에는 이미 가장 크고 성공한 기업들의 비중이 높아져 있다. 패시브 전략을 추종하는 자금이 늘어날수록, 기업들이 가진 내재가치와는 무관하게 이미 비싸진 주식들을 후행적으로 매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승자 독식'의 악순환을 만들어내며 특정 종목에 대한 집중 위험이 극도로 높아지게 된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 패시브 투자자들은 기술주 비중이 극도로 높은 인덱스를 따라가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버블을 인지하고, 가치주나 소외된 섹터에 투자한 액티브 매니저들은 시장 붕괴 이후 수년간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AI 열풍으로 인한 특정 기술주로의 쏠림 현상이 닷컴 버블 당시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패시브 투자에만 의존한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재점검이 필요하다.
결국 AI는 액티브 전략의 ‘적’이 아니라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AI를 활용해 단순 데이터 분석 업무를 자동화하는 한편, 펀드매니저는 거시경제의 큰 그림을 읽고, 기업 실적 이면의 이야기와 질적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관리하는 상상력과 통찰을 키우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유지하고 선별적인 기회를 포착하는 액티브 전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는 투자 수단이 될 것이다.
최보경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