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로 인구 구조, 산업 기반, 기술 역량과 성장 단계는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도입이 불러올 노동시장 변화와 사회적 격차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공통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과 인도 전문가들이 서울에서 AI 기반 산업전환과 포용 전략을 논의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1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주한 인도대사관과 공동으로 ‘한·인도 전략적 대화 심포지엄’을 열고 AI·안보·공급망·첨단기술 방면에서 양국의 중장기 과제를 다루는 자리를 마련했다. 행사에는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원장과 구란갈랄 다스 주한 인도대사가 참석했고, 인도 최고 대학인 인도공과대학교(IIT)와 인도 싱크탱크 옵서버연구재단(ORF) 관계자도 참여해 활발하게 의견을 교류했다. “규제가 아니라 거버넌스"... 한·인도, AI 시대 해법 공통 모색이날 AI와 일자리 변화를 다룬 ‘포용적 발전을 위한 AI와 일의 미래’ 세션에서는 산업·노동시장 전반에서 AI가 일으키고 있는 구조적 변화와 대응 방안 논의가 오갔다. 발라라마 라빈드란 IIT 마드라스 AI·데이터사이언스 교수는 인도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AI 거버넌스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며 한국 AI기본법 초안과 유사성부터 짚었다. 두 나라 모두 규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가이드라인’을 중심에 둔 접근을 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라빈드란 교수는 “AI는 경제적 파급력이 큰 기술인 만큼 규제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혁신을 제약하지 않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신뢰·혁신·형평성·책임성을 중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특히 22개 공용언어와 800개 넘는 방언이 존재하는 인도의 언어 다층 구조를 언급하며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AI 도입은 사회적 불균형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 정부는 AI 사고보고 체계, 리스크 프로그램 운영, 고위험 AI 감독 등을 포함한 단·중·장기 로드맵도 준비 중이다.
인도는 자타 공인 정보기술(IT) 강대국으로서 AI 시대에도 일찍이 대비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 딜로이트가 발표한 지난해 조사에서 인도 학생의 93%, 근로자의 83%가 이미 AI를 활용하고 있다. 인도 AI 정책 플랫폼 ‘인디아AI'가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기업의 81%가 재교육·업스킬링 확대하겠다고 조사됐다.
시다르스 야다브 ORF 박사는 자동화와 생성형 AI 확산이 엔트리 레벨 화이트칼라 직군을 중심으로 가장 빠르게 고용 구조를 바꿀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노동시장 압력으로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인도는 비공식 노동 비중이 높아 ‘포용성’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며 “대기업 중심 상향식 전략의 한국과 ‘AI 포 올(모두를 위한 AI)’을 내세운 바텀업 전략의 인도는 서로 다른 경로지만 보완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도는 지난해 기준 평균연령이 28세며 인구의 60% 이상이 35세 미만인 나라다.
금영정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AI 도입의 기업 간 격차를 지적하며 “AI는 더 이상 디지털 산업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생산·설계·운영을 바꾸는 핵심 인프라가 됐다”며 “대기업 중심 도입이 고착되면 10~20년 뒤 산업 경쟁력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구매자에서 동반자로”… 한·인도, 기술 협력 파트너로 거듭날 수 있어심포지엄 내 안보·지정학 세션인 '전략적 방패 구축 : 불안정한 안보질서 속의 방위협력'에서는 양국 간 안보 환경과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방산·기술 협력은 확대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패널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 환경 재편, 공급망 리스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미중갈등 등을 짚으며 “양국 협력이 개별 사업 협력을 넘어서 장기적 전략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냉전·탈냉전·신냉전으로 이어지는 국제 질서의 변동 속에서 경제·기술·군사 안보가 모두 융합되고 있다”며 “한국 역시 단선적 접근이 아니라 다층적 전략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러?우 전쟁, 미중 갈등, 대만해협 긴장 등 복합 위기를 언급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인도와의 연결점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핵심 과제”라고 평가했다.
인도 측 패널들은 양국의 외교·지정학적 입장 차이가 있다면서도, 방산 협력은 ‘구매자?공급자’ 방식에서 기술 이전·합작생산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쉬 바르드한 판트 ORF 부소장은 “인도는 국방 제조 역량을 국내에서 키우는 전략을 추진 중이며 한국의 조선·정밀 제조·플랫폼 기술이 인도의 현지화 정책과 맞물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단순 구매, 판매 수준을 넘어 기술협력·공동개발이 중요하다”며 “한국 기업은 인도 내수와 생산 기반에 접근할 수 있고, 인도는 기술적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는 최근 군 현대화와 함께 해외 무기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인도와 K-9 자주포 2차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다. 한국과 인도는 올해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10주년을 맞으면서 향후 협력 확대가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국방·방산 등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