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26년 자산관리 체크 포인트 - 세계경제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 시장이 뉴 앱노멀 시대에 들어섰다. 특히 경제 분야가 심하다. 이 때문에 아담 스미스식 자유방임 고전주의 ‘경제학 1.0’ 시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언식 혼합주의 ‘경제학 2.0’ 시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 ‘경제학 3.0’ 시대에 이어 ‘경제학 4.0’ 시대로 구분하는 시각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국가를 전제로 했던 종전의 세계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세계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파리기후변화협정 등과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주도의 다자 협상은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그 대신 트럼프 라운드가 출범했다.
‘트럼프 라운드’가 만든 새로운 세계 질서
국제 통화 질서도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뚜렷하다. 세계 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 즉 중심 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기축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 불균형 조정 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 보유 부담 등이 심해지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틀(frame)에 해당하는 국제규범과 이를 토대로 한 세계 경제 질서가 흐트러지면 경제주체(시장 포함)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인 포퓰리스트가 판치면서 이기주의와 국수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탈글로벌라이제이션(de-glo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2026년에는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국익을 증대하려면 자유무역 질서로는 한계가 있다. 희생당한 미국의 국익을 회복하고 증대시키려면 트럼프 라운드를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진영의 인식이다. 2025년에 기반을 마련한 트럼프 정부는 2026년에는 네 가지 점에 중점을 두면서 트럼프 라운드를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만 지는 국제규범과 협상에 대한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점이다. 30년 만에 WTO 종식 선언, 파리기후변화협정 재탈퇴, 유엔 탈퇴 시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026년에는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가가 관심사다.
둘째, 국가별로는 무역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더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대미국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무역적자 확대 국가에 통상 압력을 가해 시정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셋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통상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WTO 규범이나 자국법을 의식했던 집권 1기와 달리 트럼프 행정명령에 전적으로 의존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적자 규모, 비관세 장벽, 관세 협상 협조 여부 등에 따라 국가별로 관세율을 차별적으로 가져가는 것도 구별된다.
넷째, 통상 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시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시킨다든가, 대중국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집중적으로 통상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라운드의 핵심은 역시 중국과의 관계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디커플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전통적인 동맹국보다 더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은 미국이 버리는 다자주의를 지향하고 있어 경제패권 다툼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 것인 판가름하기가 더 어려운 국면으로 내몰리고 있다.
안보와 경제 간의 연계가 불가피한 지경학적 시대에 있어서는 경제패권 경쟁은 첨단 기술 주도력에 의해 좌우된다. 지정학적 시대처럼 정치 군사력 주도권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하나인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는 관세와 환율 등 국경을 전제로 한 수단은 뒷전에 물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이징 모델과 트럼트 모델의 다툼
첨단 기술 패권 다툼의 혁신과 보안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경쟁 촉진적인 기업 규제 수단이 효과적이다.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이 자동차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캘리포니아 효과’와, 유럽연합(EU)의 까다로운 규칙이 글로벌 벤치마크를 제시한 ‘브뤼셀 효과’가 대표적인 예다.
2026년 미·중 간 첨단 기술 패권 다툼은 ‘베이징 거버넌스’와 ‘트럼프 거버넌스’ 간 대결로 집약된다. 전자는 권위주의적 통제와 전략적 관용을 경합한 모델이다. 외부에서는 중국의 규제가 첨단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첨단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반면 후자는 미국 첨단 기술 기업을 규제하는 국가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해 보호하는 모델이다. 개인의 권리를 지경학적 경쟁에 종속시킨다는 점에서는 두 모델이 같으나 그 희생의 대가로 전자는 첨단 기술 혁신을 택했고 후자는 첨단 기술 기득권을 지키는 쪽으로 민족주의를 택했다는 점이 다르다.
두 모델은 모든 영역을 재편시키고 있는 가운데 아직은 인간의 존엄성을 섬기는지 아니면 훼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미·중 간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은 인간의 번영을 저해하지 않고 증진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첨단 기술 전쟁은 양국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를 파멸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산업적으로는 2026년에도 인공지능(AI)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다. 최근처럼 세계 경제가 어려울 때는 신기술이 출회하면서 위기 극복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발 위기론이 확산될 당시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IT)이 꽃을 피면서 세계 경제를 구해냈다.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IT가 주도 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종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성장·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블루칼라의 역습 시대
AI발 변화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곳이 고용시장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을 비롯한 저임의 저개발국 노동력 공급이 멈추는 ‘루이스 전환점(Lewisian turnning point)’이 앞당겨져 주요국 노동 시장에서 저소득층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19 지원금에 따른 자발적 실업인 코브라 효과까지 겹쳐 저소득층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했다.
2026년에는 디지털 고도화까지 이루어지면서 구조조정 대상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까지 디지털화는 블루칼라를 대신할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AI 등이 급진전되면서 화이트칼라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면서 저소득층(혹은 블루칼라)의 역습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저소득층의 역습은 성장과 고용 간의 정형화된 사실도 깨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저소득층이 내몰리면서 ‘고용 창출 없는 경기 회복(jobless recovery)’을 낳았지만 최근에는 저성장 시대가 정착되는 속에서도 실업률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고용 풍부한 경기 둔화(job full downturn)’라는 새로운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025년을 마감하면서 고개를 들고 있는 AI 거품론도 일부에서는 제2의 닷컴버블 사태로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있으나 당시 주도주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50배에 이르고 주가매출비율(PSR), 주가무형자산비율(PPR)로 본 미래 잠재 가치도 낮아 주가가 폭락해 지금과는 다르다. 성장 사이클로도 당시 주도주는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넘어가는 단계지만 AI는 유아기에서 성장기로 이제 막 넘어가고 있다.
문제는 PSR의 S(매출액), PPR의 P(무형자산)가 ‘벤더 파이낸싱(Vender Financing·VF)’으로 의심을 받기 시작한 점이다. VF는 AI 공급 업체(엔비디아)가 대준 자금으로 수요 업체(오픈AI)가 공급 업체의 제품을 사주는 순환 거래를 말한다. 공급 업체는 매출액, 수요 업체는 자본을 유치해 주가가 올라가게 된다.
AI 거품론…벤더 파이낸싱 논란
독립된 법인인 공급 업체와 수요 업체의 경영 지표는 두 업체 간의 순환 거래 내역이 포착되지 않고 각각 매출액과 신규 자금 유치로 잡힌다. 과연 이런 VF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만약 VF가 과시형 금융 연극으로 의심받으면 해당 기업은 도덕성과 투명성에 흠이 가면서 주가는 폭락하고 잰슨 황과 샘 울트먼은 사기꾼으로 몰릴 수 있다.
하지만 AI가 국민에게 파고들어 대중화되기까지 불가피한 과도기 조치라면 정반대 결과가 발생한다. VF로 가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선도 기업에 흔히 닥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등의 과도기를 넘길 수 있으면 새로운 산업이 탄생되고 선봉장에 섰던 잭슨 황과 샘 울트먼은 천재로 평가받는다.
종전 국내 바이오 기업의 경우 VF를 현금화(cash out)하기 위해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AI 거품론이 제기된 이후 다른 국가보다 국내 관련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던 것도 이런 낙인 효과가 겹쳤기 때문이다. 때맞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 간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 것도 낙폭을 키웠다.
챗GPT를 계기로 AI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지 불과 3년 남짓이다. 산업 발전상 AI는 봄날에 엄동설한 뚫고 돋은 ‘새싹(green shoot)’ 단계다. 최근처럼 거품론과 같은 곁가지에 휘둘려 뼈대가 약해지면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된다. 하지만 전지작업을 잘해 뼈대가 튼튼해지면 가을에 ‘풍성한 열매(golden goals)’를 맺을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답은 AI와 관련 반도체 기업인과 투자자, 그리고 정책당국의 몫이다.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2026년 AI와 관련 반도체 산업의 운명과 한국,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의 움직임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AI가 발전될수록 2026년에는 ‘디스토피아(dystopia)’가 커다란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도 대가뭄, 대홍수 등 이 문제로 지구촌과 전 세계인을 흔들어 놓았다.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되는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다가오는 디스토피아…위기 관리 능력 중요
2015년부터 이 과제를 다뤄왔던 세계경제포럼(WEF)은 앞으로 세계 경제에 미칠 위험 요인으로 경제, 환경, 지정학, 사회, 기술 등 5개 분야에 걸쳐 총 28개의 디스토피아 우선 과제를 발표했다. 발생 확률과 파급력을 기준으로 각각의 순위를 매겨 정책당국자와 기업인, 그리고 개인이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다.
발생 확률과 파급력을 고려할 때 최우선 디스토피아 과제인 ‘기상이변’은 1990년대 이후 교토의정서 등을 통해 각국이 노력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어 환경 디스토피아는 날로 악화되는 추세다. 더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하자마자 신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해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냉전 시대가 종료된 지 30년이 넘은 시점에서 지정학적 위험이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점도 우려된다. 미·중 간 경제패권 다툼과 맞물려 국가 거버넌스 실패, 국가 간 분쟁, 대규모 사이버 테러 공격, 국가 붕괴 위기, 대량 살상무기 등으로 촉발된 국민 감정이 각국의 이기주의와 군축 경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위험의 경우 대규모 사이버 공격은 발생 확률과 파급력 면에서 해가 지날수록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환경은 혁신을 가져왔지만 해킹, 정보 유출 등에 따른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앞당겨짐에 따라 노동 시장 파괴 등 새로운 위험도 높아지는 추세다.
사회적 위험의 경우 경제적·사회적·환경적 발전으로 인해 시스템상 취약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우려한 것도 주목된다. 특히 개도국에서는 빠른 기술 변화로 만성적인 대규모 실업이 발생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그대로 방치하면 2011년에 발생했던 ‘아랍의 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와 같은 폭등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2025년에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권력욕이 강한 포퓰리스트 최고통수권자와 기득권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우리 모두가 Z세대(We all are Gen Z)’ 운동이 발생했다. 2026년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 시장에 더 큰 변화를 예고한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촉발된 스트롱맨 체제는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은 사회적 안정을 저해하고 평등과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사회적 위험에 대한 논의와 해결책 마련을 어렵게 한다. 사회구성원은 안정감을 찾기 위해 국가 전체에 속하기보다 동료 의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에 속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사회적 디스토피아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디스토피아 시대에 있어서는 종전의 규범과 제도보다 정의와 도덕 등과 같은 행동주의 가치와 기본이 더 중시될 가능성이 높다. 디스토피아, 그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해 위험이 상수항(함수 y=a+bx에서 'a')이 되는 시대에 모든 경제주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위기 관리 능력이 최고 덕목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