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3일 10:3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단순히 상속·증여세를 아낀다는 생각으로 싱가포르 등지로 계획 없이 출국한다면 큰일날 수 있습니다."
13일 박주희 삼일PwC 파트너(사진)는 최근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는 해외이주 움직임과 관련해 이같이 경고했다. 삼일PwC에서 해외 자산투자 및 거주지 이전 관련 세무 컨설팅을 맡고 있는 박 파트너는 "고액자산가들도 거주지의 해외 이주와 관련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다"며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해외로 나가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세금 부담도 지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박 파트너의 일문일답.
▶해외이주와 관련해 오해 받는 가장 대표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1년에 183일만 해외에 나가 있으면 해외 거주자로 인정 받아 국내에서 소득세나 상속·증여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세법 상 183일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흔히 잘못 생각하는 부분인데, 이는 ‘세법 상 주소’가 없을 때에만 따지는 요소이다."
▶어떻게 사실과 다른가.
"과세당국은 단순히 날짜 뿐 아니라 실질을 근거로 ‘세법 상 주소’ 및 과세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해외에 더 오래 거주하더라도 국내에 생활의 근거지가 남아있고 사업이나 경제 활동이 주로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국내 거주자로 분류돼 국외소득이나 국외체류 중 상속·증여에 대한 과세도 이뤄진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거주지를 이전한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무엇인가.
"완전히 이민을 간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생활의 근거지 자체가 외국이 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로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더라도 언제나 돌아가는 곳이 그 나라가 돼야 한다. 사업활동은 물론 개인 네트워크와 가족 생활 역시 해당 국가에서 이뤄져야 실질적인 거주지 이전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오해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자녀와 함께 해외로 나가 증여를 다 마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살면 된다는 오해도 있다. 일부 자산이전 컨설팅사들을 중심으로 나오는 얘기다. 5년만 해외에 지내다 오면 된다는 식의 구체적인 시한도 제시된다."
?▶어떤 부분에 틀린 이야기인가.
"해외 이주 이후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해외 거주기간 증여한 것이 문제가 되는지 여부는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증여 시점에 세법 상 ‘거주자’였는지에 대한 판단 문제이다. 국세청에서 납세자에게 소득세 등 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이 기본적으로 5년이다 보니 5년 이야기가 나오는데 증여세의 부과제척기간은 10년이고 그마저도 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 등은 15년 등으로 그 기간이 늘어난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돌아오지 않던 증여 시점에 세법 상 한국 거주자였는지 여부에 따라 과세가 이뤄질 수 있다. 증여시점에 여전히 한국 거주자로 인정된다면 해외에서 이뤄진 자산 증여에 대해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더불어 부모와 자녀가 모두 비거주자로 인정되어도 증여자산이 한국에 있다면 여전히 증여세가 발생할 수 있다."
▶그같은 이유로 실제로 실패하는 사례가 있나.
"해외이주 등을 탐색하다가 접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해외이주 시 발생할 수 있는 국외전출세나 국내 자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타 세금 유출을 간과했던 경우도 있고, 세제상 이점을 받기 위해서는 해외로 아예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데 언어 문제나 문화 차이 등 바뀐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이주를 생각하고 싱가포르 등에 수개월 체류한 이들 중에는 '24시간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환경에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했다"며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도 보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단순히 세금 회피를 위한 자산 이전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나와 가족의 생활의 근거지를 영구히 해외로 옮긴다는 것은 중요한 결정이므로, 단순한 절세 목적 이외에도 명확한 목표와 계획이 필요하다. 사업상 기회나 글로벌 자금 유치, 투자의 편이성, 자녀교육 등 해외의 여러 인프라를 활용했을 때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이 한국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해외 이주까지 생각하는 것이 좋다. 반드시 해외이주를 하지 않더라도 한국에 남아 있으면서 글로벌 자산배치 및 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살필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들어 해외 자산 상담 건수가 늘었나.
"그렇다. 조세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마다 해외 이주 상담이 늘어난다. 2023년부터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유력 시 되면서 주로 투자운용을 하는 자산가들의 상담이 많?았다. 금투세는 두 차례 시행이 유예되고 결국 폐지되었으나 상담한 자산가들의 상당수는 실제로 해외 이주를 했다. 올해는 다른 국가로 거주지를 이전할 때 부과될 수 있는 국외전출세의 대상을 국내주식 뿐만 아니라 해외주식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정부가 발표하면서 상담이 늘었다. 해외에 자산을 주식이나 지분으로 보유하고 있으나 국내에 거주하고 있던 자산가들도 국외전출세 부담이 커지기 전에 빠져나가려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해외로 이전하려는 자산가들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흔히 상속·증여세율을 낮추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실제로 상담해보면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글로벌 자금 유치나 투자 환경에 있어서의 유리한 점, 조세를 포함한 각종 제도에 있어서의 예측가능성을 해외 이주의 이유로 드는 이들이 많다. 한국인들이 해외이주지로 가장 많이 고려하는 싱가포르는 납세자가 소득 및 공제 등을 신고하면 과세당국이 내야 할 세금을 확정하는 구조다. 납세시점에 과세당국이 세금을 확정하고 납세자에게 이의신청을 받아 조정하는 절차를 밟는 만큼 사후적인 세무조사도 드물고 오류가 있어도 협력적 수정이 가능하다. 한국은 싱가포르와 조세환경이 많이 다르므로 과세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겠으나, 납세자가 자진하여 오류를 수정할 때 가산세 등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제도 등 과세당국과 납세자가 협력적 관계를 구축해가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싱가포르가 자산가들의 소득 자체를 과세하기보다 자산가들의 자금이 유입됨에 따라 발생하는 고용 창출, 관련 서비스 산업 성장 등의 파급 효과에서 세원을 확보한다는 점을 살펴볼 때, 우리도 자산가들의 자본이 국내에 남아있도록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등을 강화하고 각종 인프라를 개선한다면 사회적 저항이 큰 상속·증여세율 인하까지 하지 않더라도 자산가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