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약이 없어 대증치료에 그치고 있는 혈관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신약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K-바이오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하겠습니다."
강상원 바스테라 대표는 최근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 산학협력관에 자리한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바스테라는 신호전달체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혈관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텍이다. 사명인 바스테라는 혈관을 뜻하는 바스(vas)와 치료를 뜻하는 테라퓨틱(theraputic)의 합성어다.
바스테라는 산화스트레스, 항산화 등으로 인한 희귀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저분자 혁신신약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레독스 메디신 분야의 대표 기업 가운데 한 곳이다. 레독스 메디신은 산화스트레스나 환원스트레스 상태를 조절해서 세포 기능을 정상화하는 치료제다.
바스테라는 내년 초 주력 파이프라인인 'VTB-10'의 임상 1상에 돌입한다. 폐동맥 고혈압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게 목표인 약물 임상은 세계 첫 사례다. 강 대표는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으로 병리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해 환자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레독스 신호전달계 글로벌 석학…30년 한우물 연구서울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한 강 대표는 연세대 생화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해 감자 토마토 등 농작물의 품종 개량을 하는 일보다는 생화학 연구가 더 끌렸기 때문이었다.
단백질 효소 연구를 주로 하던 강 대표가 세포신호전달 연구를 시작한 건 1995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심장폐혈액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지도교수는 '대한민국 1호 국가 과학자'로 선정된 이서구 박사였다. 이 박사는 활성산소가 세포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과정을 밝혀 노화와 질병의 연관성을 제시한 세포신호전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이 박사는 강 대표에게 자신이 처음 발견한 레독스 효소의 작용기전 연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강 대표는 "새로운 분야 연구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나중에 논문 쓰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만류했다"며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 분야라는 점에 마음이 끌려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이 박사가 1988년 세계 최초로 발견한 단백질 효소는 퍼록시레독신(Peroxiredoxin, PRX)이다. 산소를 이용하는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인 레독스 신호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이다. 퍼록시레독신은 세포 내 과산화물, 특히 과산화수소(H2O2)와 유기과산화물(ROOH)을 제거하고 산화환원신호를 조절하는 효소 단백질이다. 항산화 효소이면서 세포신호전달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레독스 센서' 역할을 한다. 이 단백질이 결핍되면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만성신장병, 암, 난청 등이 발병한다.
2002년 이화여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부임한 뒤에도 강 대표는 레독스 연구를 계속했다. 2005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세계 최초로 레독스 신호전달계 작용원리를 규명한 논문을 게재했다. 퍼록시레독신이 동물세포의 신호전달에 중요한 효소라는 걸 처음 밝혀낸 연구였다. 이후에도 사이언스 등에 활성산소 및 레독스 신호계 연구 논문을 꾸준히 실었다. 지금까지 쓴 논문은 196건, 논문 인용횟수는 1만8918회에 이른다.
강 대표는 특히 혈관 신호전달에 집중했다. 혈관 질환은 임상 연구는 많지만 기초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던 분야였다. 연구가 수월치 않아서였다. 만성질환이 대부분인 혈관 질환은 수십년에 걸쳐 병이 진행되기 때문에 병리학적인 기전 연구가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이렇다보니 혈관 질환은 병의 원인을 고치는 근원적 치료제가 대부분 없고 대증적 치료만 이뤄지고 있다.
강 대표는 세계 최초로 동맥 혈관의 정상화 기전을 밝혀냈고 네이처에 연구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은 글로벌 논문 피인용 횟수가 460회에 이른다.
'퍼록시레독신 모방체' 세계 첫 발견…치료제 개발 '물꼬'강 대표는 2010년 천연물에서 퍼록시레독신과 똑같은 활성을 가진 물질을 발견했다. 퍼록시레독신 모방체를 발견한 첫 사례였다. 바스테라의 핵심 저분자 효소 기술인 켐자임(Chemzyme)이다. 천연 효소의 활성을 모방하는 합성 저분자 화합물이다. 강 대표는 "저분자 화합물 스크리닝을 통해 약물을 확보했다"며 "저분자 화합물인데도 실제 효소처럼 작동하는 물질"이라고 했다.
퍼록시레독신은 몸 속의 활성산소인 과산화수소를 물로 중화시키는 단백질 효소다. 그런데 염증, 감염 등으로 몸 속에 활성산소가 너무 많아지면 퍼록시레독신의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퍼록시레독신이 부족해지고 항산화, 산화스트레스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게 된다. 이는 심혈관 질환, 암, 퇴행성 뇌질환 등의 원인이 된다.
켐자임은 퍼록시레독신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동시에 퍼록시레독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강 대표는 "켐자임이 작동해서 활성산소를 줄여서 항상성을 유지하게 되면 원래 엔자임인 퍼록시레독신이 더 강력하게 활동하게 된다"고 했다.
켐자임을 발견한 강 대표는 상업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국내 대형 제약사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한결같이 외면했다. 당시엔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신약 개발은 뒷전이었고 제네릭 개발에만 매달리던 때다. 강 대표는 "아주 초기단계 물질이라는 이유로 다들 공동개발을 꺼렸다"고 했다.
그러던 도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창업과제에 선정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게다가 국내 심혈관학회에서 켐자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가 임상의들의 신약 개발 독려를 받은 게 자극제가 됐다. 강 대표는 "혈관의 평활근을 줄이고 내피세포가 살아나게 하는 기전은 처음 본다면서 이게 우리가 찾던 약물이라는 임상의들의 호평을 들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벤처캐피털 프리미어파트너스 심사역의 한마디도 힘이 됐다. 강 대표는 "심혈관학회에서 발표를 들은 심사역 한 명이 찾아와 '회사 차리면 연락달라'며 명함을 건넸다"며 "초기 펀딩 때부터 자금 지원을 해주는 등 도움을 줬다"고 했다.
강 대표는 2018년 1월 바스테라를 설립했다. 그는 "내가 연구하는 게 진짜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며 "한국에서 제대로 된 글로벌 혁신신약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내년 폐동맥 고혈압 신약 첫 임상…2027년 환자 대상 임상”바스테라가 보유한 핵심 기술은 레독시자임(Redoxizyme)이다. 퍼록시레독신의 활성을 모방하는 저분자 효소인 PRX 켐자임 라이브러리 플랫폼이다. PRX 켐자임은 산화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생긴 희귀난치성 질환에서 손상된 PRX 효소의 기능을 대체해 신호전달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기전을 가진 저분자 효소군이다. 강 대표는 "켐자임은 엔자임, 나노자임 등에 비해 크기가 작고 안정적"이라며 "제형이 쉽고 생산비용도 경제적이어서 강점이 많다"고 했다.
바스테라가 보유한 켐자임 플랫폼 기술 관련 특허는 총 33개다.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등에서 특허 등재했거나 출원 중이다.
바스테라는 지난해 2세대 켐자임의 물질특허를 확보했다. 기존 켐자임에 비해 효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독성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강 대표는 "독성 문제에서 사실상 자유로운 2세대 켐자임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며 "올해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 1상 허가를 받은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 VTB-10의 임상을 내년 초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VTB-10의 임상 허가 절차는 국내서 3개월 만에 마쳤다. 지난 7월 임상 허가 서류를 제출했고 10월 말에 승인을 받았다. 한 차례 서류 보완을 거친 것을 감안하면 심사에 2개월 정도 걸렸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불과 한달만에 임상 1상 허가를 내줬다. 강 대표는 "서울대 의대에서 정상인 80명을 대상으로 VTB-10의 안전성 검증을 할 예정"이라며 "2027년에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a상에 진입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임상 2a상에서 효능이 확인되면 조건부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폐동맥 고혈압은 폐동맥 혈관 자체가 두꺼워져서 발생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5년 생존율은 70% 수준이다. '순환기계의 암'이라고 불린다. 호흡곤란, 가슴통증, 극심한 피로감 등으로 정상생활이 어렵다. 국내 환자는 30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2024년 80억 달러였던 글로벌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34년 130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FDA 승인을 받은 첫 폐동맥 치료제는 미국 머크(MSD)의 '윈리베어(성분명 소타터셉트)'다. 2024년 3월 FDA 승인을 받았다. 의료 현장에서 쓰이는 다른 10여종의 약은 대증적 치료제다. 강 대표는 "윈리베어는 평활근을 이완시켜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효능이 있지만 망가진 혈관의 내피세포를 회복시켜주지는 못한다"며 "폐동맥 고혈압을 완치하는 약은 아직 없다"고 했다.
바스테라의 주력 파이프라인 VTB-10은 평활근을 얇게 만들어 혈관을 뚫어주는 동시에 혈전 방지 역할을 하는 내피세포를 회복시켜준다. 혈관 내피세포에서는 VEGFR2의 활성을 회복시키고 평활근세포에서는 PDGFRβ의 과활성화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PRX 결핍으로 깨진 혈관 신호의 균형을 회복시켜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효과를 낸다"고 했다.
바스테라는 동물실험에서 VTB-10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했다. 마우스 실험에서 0.5mpk(체중 1kg당 약물 1mg 투약)를 5주간 투약했더니 내피세포와 평활근이 정상화됐다. 강 대표는 "평활근과 내피세포를 정상화시키는 효능을 가진 약물은 VTB-10이 세계적으로 유일하다"며 "사람에게서는 3~6개월가량 경구 투약하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머크의 윈리베어는 세포를 죽이면서 혈관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전신독성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며 "VTB-10은 혈관 세포를 죽이지 않고 항상성을 회복시키는 것이어서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빅파마들 관심 높아…2027년 IPO 목표"바스테라는 글로벌 빅파마와의 공동연구도 추진 중이다. MSD, 일라이릴리, 사노피, 노보노디스크, 로슈 등이 VTB-10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다. 강 대표는 "약물 기전은 이미 논문 등을 통해 입증된 만큼 안전성과 효능만 확인되면 기술수출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며 "빅파마들이 비만약의 뒤를 이을 빅마켓 후보로 심혈관질환 치료제를 지목하고 있는만큼 VTB-10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바스테라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VTA-27),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치료제(VTA-63)도 개발 중이다. 모두 경구약이다. 새로운 기전의 혁신 신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VTA-27은 STAT3를 타깃해 성상교세포 활성화를 억제하고 동시에 신경세포 사멸을 막아주는 이중기전을 갖고 있다. 강 대표는 "VTA-27은 손상된 뇌혈관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비임상시험에서 확인했다"며 "내년 말 임상 1상 시험 허가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VTA-63은 EGFR을 타깃해 유방암 전이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2027년 임상 1상 시험 허가를 받을 계획이다. 강 대표는 "흑색종, 위암, 림프종 등으로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바스테라는 2027년 상장이 목표다. 내년 VTB-10의 임상을 시작하면 기술수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강 대표는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면 곧바로 상장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바스테라는 지금까지 총 235억원을 투자 받았다. 내년 시리즈C 투자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 연구과제로 지원받은 연구개발비는 100억원이다. 직원은 22명이다.
강 대표는 "남들 따라가지 않고 순수한 국산 기술로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제대로 된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계열내 최초)로 반드시 성공사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박영태 바이오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