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은 '꼰대'라지만…영포티 직장인, '업무에 진심'인 이유 ['영포티' 세대전쟁]

입력 2025-11-17 09:41
수정 2025-11-17 10:21


<i>"본인은 스마트하고 경험 많은 '중년의 매력남'이라고 생각한다. 말투는 부드럽고 배려심 있는 척하지만, 내면은 권위적이다. 결정은 본인 멋대로 하고, 책임은 아래 사람에게 넘긴다."</i>
직장은 '세대전쟁'의 최전선이다. 가치관이 충돌하는 20대 초·중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령대가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차·부장급 '영포티'와 일반 직원, 혹은 대리급의 넥스트 포티는 대면 시간이 가장 많은 축에 속.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는 글들이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은 그럴 만한 일이기도 하다. ◇ 직장인 10명 중 4명 "영포티 강점, 실무 능력·리더십"한경닷컴은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에 의뢰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직장인 1053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영포티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국내 언론사가 직장 내 영포티 세대 갈등에 관한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직장인들은 영포티를 직장에서 리더층으로 진입하고 있거나 중간관리자로 '끼인 세대'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37.7%(397명)는 '리더층으로 진입 중'이라고 답했고 35.7%는(376명) '중간관리자로 끼인 세대'라고 했다. 리더층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응답은 19.6%(206명)에 그쳤다.

기업에선 1970년대 후반생부터 1980년대 초반생을 핵심 인력으로 본다. 실제로 이 연령대 직원들은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워킹 레벨(실무자)이면서 중간관리자, 임원의 역할 등을 맡고 있다.

직장인들도 영포티의 역량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 응답자 가운데 42.9%(452명)는 영포티 직장인의 강점으로 '실무 능력과 리더십의 병행'을 꼽았다. 이는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평가이기도 했다. 세대 구분 없이 영포티의 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또 다른 강점으로는 '위아래 세대 간의 조율 능력'(25.5%·269명), '경험과 감각의 균형'(19.6%(206명) 등이 지목됐다. 이어 '신세대 감각 이해력' 9.4%(99명), 기타 2.6%(27명) 순이었다.

◇ 2030 직장인 "영포티, 구세대식 소통에 권위적 태도"강점만큼 약점도 명확했다. '구세대식 소통 방식'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는데 2030세대 직장인들은 이와 함께 '권위적인 태도'도 지적했다. 전체 응답자 중 37.1%(391명)는 '구세대식 소통 방식'을 영포티의 약점으로 봤다. 20대의 경우 39.3%(42명), 30대는 45.3%(120명)가 이와 런 답을 내놨다. 심지어 40대 직장인(38.3%·158명) 스스로도 같은 응답을 했다.

하지만 50대 이상에선 영포티의 최대 약점으로 '지나친 실용주의'(48.9%·131명)를 지적했다. '구세대식 소통 방식'을 문제로 본 응답은 26.5%(71명)에 그쳤다. 후순위 약점으로 '권위적 태도'를 꼽은 20대(30.8%·33명)·30대(22.3%·59명)와는 차이가 명확했다.

50대 이상 직장인들이 '영포티 후배'를 지나치게 실용적이라고 본 이유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50대 이상 응답자에게만 따로 영포티를 어떻게 보는지 묻자 '성과 중심적이지만 조직 충성도는 낮다'는 응답이 34.3%(92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영포티가 50대 이상 응답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묻는 항목에선 57.1%(153명)가 '겉으로는 공손하지만 내심 거리를 둔다'고 토로했다.

책 '영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 저자인 이선미 TBH글로벌 팀장은 "영포티의 조직관은 '조건부 충성'으로 요약되는데 회사를 위해 희생하진 않지만 자신의 전문성을 통해 조직에 기여한다"며 "이런 인식은 윗세대에겐 냉정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외환위기 이후 생존의 언어로 형성된 현실주의적 태도"라고 설명했다.

◇ '영포티는 권위적' 평가 다수…"업무 방식 차이서 비롯"영포티의 약점으로 구세대적 소통 방식과 권위적 태도를 지목한 2030세대도 평소 이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응답자 가운데 45.7%(170명)가 영포티를 '소통은 하지만 권위적'이라고 바라봤다. '여전히 보수적'이란 응답도 27.7%(103명)에 달했다. 9.9%(37명)만 영포티가 '윗세대보다 유연하다'고 인식했다.

심지어 영포티 선배가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묻는 항목에선 47.6%(177명)가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영포티와 2030세대 간 업무 방식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로 풀이된다. 영포티를 포함하는 X세대의 경우 성과로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2030세대는 '권한의 위임', '의사결정 참여'를 중시한다. 여기서 양측이 충돌한다. X세대 팀장이 '내가 책임질 테니 따르자'고 말하면 2030세대 직원들은 '이 방향이 왜 맞는지 먼저 설명해 달라'고 답하는 식이다.

이 팀장은 "X세대에겐 이러한 과정이 비효율로 보이지만 2030세대에겐 그것이 공정한 협업의 시작"이라며 "X세대는 권위보다 실력을, 하지만 여전히 질서와 책임의 위계를 존중하는 세대지만 2030은 수평적 관계를 선호하고 직급보다 전문성으로 상호 존중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X세대의 '선배로서의 조언'이 후배 세대엔 '간섭'으로 들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 '권위적 꼰대'지만 "2030보다 업무 몰입도 높아" 결국 가치관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다. 이는 직장 내 세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고리로도 작용한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44.3%(734명)가 직장 내 세대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가치관과 태도'를 지목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영포티가 기업 핵심 인력이자 조직의 중추라는 데 대해선 이견이 없다. 구세대적으로 소통하는 권위적인 '꼰대'라고 볼지언정 영포티 직장인들이 업무에 진심인 성향이 강하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했다.

2030세대보다 영포티의 업무 몰입도가 '높다'는 응답은 총 50.9%(536명)에 달했다. '낮다'고 답한 응답자는 15%(158명)뿐. 50대 이상만 떼어놓고 보면 같은 응답이 56.4%(151명)로 뛰었다. 40대 응답자들의 경우 59.8%(247명)가 같은 답변을 내놨다. 20대와 30대도 각각 35.5%(38명), 37.7%(100명)로 나타났다. 모든 연령대에서 영포티 업무 몰입도가 더 높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만 영포티가 업무에 몰입하는 이유는 직장 내 승진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를 넘어선 개인의 생존 전략과 연관돼 있다. 이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삶의 핵심으로 두던 윗 선배 세대와는 또 다른 지점이다. 40대 직장인들에게만 '현 직장 내 생존 전략'을 묻자 '승진보다 개인의 기술·전문 역량을 쌓는 데 집중'한다는 응답이 3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팀장은 "외환위기 이전 세대가 승진과 직급을 성공의 지표로 여겼다면 X세대의 성공관은 단순한 직장 내 성취의 개념을 넘어선다"며 "그들에게 성공은 '조직 안에서의 위치'가 아니라 '조직 밖에서도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에 자기 계발과 재테크, 투잡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