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훈 부장 "'뱃속의 시한폭탄' 대동맥류, 스텐트 시술로 파열 미리 막아요"

입력 2025-11-12 15:44
수정 2025-11-12 15:45
혈관이 꽈리처럼 부푸는 대동맥류가 복부 혈관에 생기면 치료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배를 여는 수술로 혈관 바깥쪽에 인조 혈관 등을 덧대거나 배를 여는 대신 허벅지 등의 혈관을 이용해 문제가 생긴 부위까지 이동한 뒤 스텐트(가는 관) 그라프트(인조혈관)를 넣어 파열을 막는다.

유지훈 중앙보훈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부장은 복부 대동맥 파열 환자를 위한 스텐트 시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한 의사다. 2017년 복부는 물론 흉부를 포함한 대동맥류 스텐트 시술 500건을 국내 처음으로 달성했다. 지난해엔 복부 대동맥류만 스텐트 시술 1000건을 넘었다. 유 부장은 “통상 흉부외과는 수술에 집중하지만 스텐트 시술을 도입한 뒤 좀 더 폭넓게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며 “스텐트 시술을 하다 언제든 수술로 전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시술 건수를 확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복부 대동맥류 스탠드 최다 시술대동맥 혈액 흐름에 문제가 생겨 풍선처럼 부푸는 대동맥류는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크기가 커져 터지면 손쓸 새도 없이 돌연사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성인 복부 대동맥 직경은 통상 2㎝ 이하다. 직경이 3㎝를 넘거나 정상 복부 대동맥보다 50% 이상 확장하면 복부 대동맥류로 진단한다. 작은 부위만 팽창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동맥류 크기가 5㎝를 넘으면 꼭 치료해야 한다. 대동맥류가 커지는 속도가 빨라질 때도 마찬가지다. 혈관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유 부장이 전공한 흉부외과 의사들은 주로 이런 대동맥류도 수술로 치료한다. 스텐트 시술은 내과나 혈관외과 등의 영역으로 여겨져서다. 초기 대동맥류 환자를 볼 때 유 부장도 수술 중심 치료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2007년께부터 스텐트를 적극 도입했다. 환자가 갖는 이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동맥류를 치료하기 위해 개복 수술을 할 땐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데다 최소 1주일가량은 입원 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나이가 많아 수술 부담이 큰 환자는 이런 이유로 대동맥류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국소마취로도 할 수 있는 스텐트 시술은 시술 다음 날에도 바로 환자가 퇴원할 수 있다. ◇ 장기이식 후 스텐트 시술로 찾기도흉부외과 의사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수술 경험이 쌓인 데다 스텐트 시술도 많이 하다 보니 유 부장을 찾는 환자 중엔 난도 높은 환자도 많다. 대동맥류를 발견했지만 다른 병원에선 수술밖엔 답이 없다는 얘길 듣고 파열 여부는 ‘운명’에 맡기겠다며 살아가는 환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간이나 신장 이식을 받은 뒤 큰 병원에선 스텐트 시술은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병원 직원 등의 추천으로 보훈병원을 찾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유 부장은 수술과 스텐트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시술도 국내 처음으로 시행했다. 대동맥궁 치환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개흉 없이 개창형 스텐트를 넣으면서 혈관을 잇는 수술을 동시에 한 경험도 있다.

그는 “최근엔 96세 환자의 흉부와 복부 대동맥류도 동시 시술을 통해 성공적으로 치료했다”고 말했다. 흉부엔 개창형 스텐트를, 복부엔 대동맥류 스텐트를 각각 함께 시술하는 복합 시술을 시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국내에도 많지 않다. 개창형 스탠트는 기존 스텐트 그라프트와 달리 작은 구멍이 있어 주요 동맥 분지로 혈액이 흐를 수 있도록 돕는다. 고려해야 할 혈류도 많아지기 때문에 시술 난도도 높아질 수 있다. ◇ 차세대 스텐트 개발에도 참여스텐트 시술을 할 땐 혈관을 볼 수 있는 조영제를 투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환자에 따라 이런 치료가 어려울 때도 있다. 치료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도 늘었다. 응급 상황이라면 조영제 투여 없이 이동형 엑스레이인 씨암만 이용해 빠르게 시술을 마치기도 한다. 신장 투석 환자는 일반적인 조영제 투여법으론 신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신장 부담을 줄여주는 부위까지만 조영제를 투여한 뒤 시술을 마치기도 한다. ‘빅5’병원으로 불리는 대형 대학병원에서도 환자들이 유 부장을 찾아오는 이유다. 그는 “스텐트 시술만 하다 보니 자연히 노하우가 쌓였다”고 했다.

시술이 복잡한 환자가 많다 보니 3차원(3D) 프린팅을 활용해 접근법을 고민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최근엔 차세대 스텐트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그는 “국내 의료진이 개발한 개창형 대동맥 스텐트 그 리프트 임상시험에 참여해 절반 가까운 임상 시술을 시행했다”며 “국내 의료기관 중엔 참여 환자가 가장 많다”고 했다.

대동맥류 환자에게 그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금연이다. 유 부장은 “시술받은 뒤 담배를 피우다 재발해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며 “혈압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심장 초음파 검사 등을 할 때 복부 쪽을 잠깐만 살펴봐도 대동맥류를 확인할 수 있어 조기 발견에 도움된다”며 “시술 후엔 1년에 한 번은 병원을 찾아 스텐트 상태를 봐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