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천 작가(69·서울대 서양화과 명예교수)는 ‘미술은 어렵다’는 통념과 싸워온 작가다. 1980년대 중반부터 그는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며 대중에게 ‘쉽고 친근한 예술’을 선보여왔다. 윤 작가는 항상 “대단하고 멋진 것들만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볼품없고 하찮은 것도 소중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윤 작가가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에 ‘시시하고 미미한 것들’로 만든 작품들을 들고 나왔다. 전시 제목도 ‘시시·미미(微微)’다. 갤러리밈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에는 3층부터 6층까지 4개층 전관에 총 70여점의 신작이 나와있다. 5층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작품을 주목할 만하다. 분홍색과 10m에 가까운 크기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개 혀’(개의 혀)라는 제목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익숙한 문구들’ 연작도 마찬가지다. 합판에 철제 프레임을 두르고 명조체로 레이저 각인한 외형은 근엄하지만 , “산은 산이요 커피는 셀프” 같은 내용은 실소를 자아낸다. 이처럼 진지한 형식에 시시한 내용을 담아 ‘예술의 친근함’을 전하는 게 윤 작가의 방식이다.
6층에 나온 ‘시시한 오브제’ 연작은 일상의 사물을 박물관 유물처럼 전시한 작품들이다. 녹슨 톱, 씹다 뱉은 껌, 쪼그라든 플라스틱병 같은 폐기물들이 묵직한 철판 전시대와 투명 보호 케이스 안에 놓였다. 핵심은 제목이다. 씹던 껌에는 ‘스트레스를 씹다’는 제목이 붙었고 , 100자루의 펜은 ‘입사지원서를 쓸 때마다 새 펜으로 서명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제목을 통해 취업 준비생의 이야기를 얻었다. 빗자루는 ‘개혁의 도구 (싹-다)’ , 소리 내는 닭 인형은 ‘뭉크 '절규'의 새 버전’이 됐다.
웃음을 띠게 하는 이런 ‘시시한’ 작품들은 3층의 회화 연작으로 이어진다. ‘시시한 대상으로부터’ 연작은 길에서 만난 고철 덩어리나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물들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4층에서는 작가가 네팔과 인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으로 엮어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상의 사물과 풍경도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보느냐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알려주는 전시다. 전시는 다음달 2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