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본법' 과태료 1년 이상 미룬다…정부 "규제보다 성장에 방점"

입력 2025-11-12 17:34
수정 2025-11-13 00:36
폐암 진단을 위해 촬영한 흉부 영상 한 장이 서버로 전송되자 인공지능(AI)이 2초 만에 병변의 크기와 위치를 분석했다. 의사는 화면을 잠시 확인하는 것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내렸고 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치료를 받는다.


조만간 AI가 의사의 보조를 넘어 진단과 처방의 주체가 되는 시대가 올 전망이다. 지금은 의료 현장에서 보조 도구 수준으로 쓰이지만 변화의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의료 부문은 AI 혁신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분야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2034년 900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영상 플랫폼이 ‘고영향 AI’로 분류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AI 기업은 위험 관리 방안 및 이용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학습 데이터와 관리·감독자도 공개해야 한다. 고영향 AI를 이용한 제품·서비스 출시 전 영향평가도 의무화된다. 의무 위반에 따른 시정 명령 미이행 시 기업은 3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을 수 있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가 이뤄지는 AI산업 특성상 행정 절차에 가로막혀 기술 개발이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반영해 과태료 부과를 1년 이상 유예하기로 했다. 처벌보다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줌으로써 산업 진흥을 막지 않겠다는 의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2일 ‘AI 기본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고, 다음달 22일까지 의견 수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한국은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AI 기본법을 제정했다. 선제적으로 규제의 틀을 갖췄다는 평가와 동시에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의료 AI, 레벨4 이상 자율주행차, 소형모듈원자로(SMR) 제어 AI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여러 분야가 고영향 AI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날 공개된 시행령 제정안에는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없도록 구체적인 적용 기준이 담겼다. 가령 생성형 AI가 만든 콘텐츠가 실제와 구분되지 않으면 사업자는 딥페이크임을 명시하도록 했다. 해외 사업자의 경우에도 매출 1조원 이상 등 일정 기준에 해당하면 한국에서 법적 책임을 질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의무화했다. 오픈AI, 앤스로픽 등 글로벌 AI 사업자가 빠르게 한국 시장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과 동일한 의무를 지도록 해 책임 회피를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입법 예고 기간에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AI산업 발전과 안전·신뢰 기반 조성이라는 입법 취지를 시행령에 잘 반영하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