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 약은 단순한 비만약을 넘어 ‘만병통치약’으로 진화하고 있다. 비만, 당뇨 등 대사질환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암, 알츠하이머병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다.
1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최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와 노보노디스크 ‘위고비’ 등 GLP-1 계열 비만약이 잠재적으로 다른 질환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 결과 GLP-1 계열 비만약은 여러 동물실험에서 심장, 신장, 간 등 여러 장기의 염증 반응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약물은 심혈관질환 위험도 20%가량 낮춘다.
원래 장에서 분비되는 GLP-1 호르몬은 췌장을 자극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을 분비하게 한다. GLP-1 계열 약은 GLP-1 호르몬을 흉내 내 소화 속도를 늦추고 식욕을 억제한다. 이 때문에 체중 감량만으로도 개선되는 심뇌혈관질환, 수면 무호흡증, 다낭성 난소증후군 등 비만 관련 질환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한발 더 나아가 실험 동물 뇌의 GLP-1 수용체를 차단했을 땐 항염증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약물은 산소와 영양분 외 이물질이나 병원체 침입을 막는 뇌혈관장벽(BBB)에 가로막혀 뇌로 가지 못한다. 하지만 연구진은 GLP-1 계열 약물 일부가 BBB를 통과해 면역세포를 통해 항염증 효과를 내는 것으로 추정했다.
제약업계는 비만약을 ‘게임 체인저’로 보고 있다. GLP-1 계열 약이 당초 당뇨병 치료제에서 시작했지만 비만약을 넘어 이제는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대규모 코호트(동일집단) 연구에서 GLP-1 계열 약이 암 10종의 발병 위험을 유의미하게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중 췌장암(59%)과 간세포암종(53%)은 발병 위험이 5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등 신경퇴행질환 극복 가능성도 제시된다. 덴마크 카리야파마슈티컬은 현재보다 더 높은 농도로 뇌에 침투할 수 있는 GLP-1 계열 약 개발에 나섰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은 파킨슨병 치료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