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도 알잖아요"…명문대생들 줄줄이 터질게 터졌다 [이슈+]

입력 2025-11-11 19:35
수정 2025-11-12 00:11
"정직하게 공부해서 푼 거보다 AI 띡하고 돌린 게 점수가 더 잘 나와요. 이거 안 쓰면 오히려 손해에요. 전에 죽어라 공부해서 풀었는데, GPT 쓴 애들이랑 점수 비슷한 거 보고 '이젠 쓸데없는 양심은 버리자'고 생각했죠."

"교수님들도 다 아시잖아요. AI 쓰는 거 알면서 과제나 온라인 시험 치게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대면으로 보던가요."
지난 10일 서울의 한 대학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AI 커닝'으로 논란이 된 연세대·고려대 사태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단순히 일부 학생의 일탈이 아니라, 이미 'AI가 전제된 학습 환경'에 대학이 뒤처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AI를 이용한 시험 부정행위는 명백한 커닝이지만, 동시에 이번 사태는 대학이 여전히 '비대면·AI 시대'에 걸맞은 평가 방식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연고대, 재수 없어서 걸린 것"…과제·시험 모두 GPT 의존
서울 모 대학 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다니는 김모 씨(22)는 "이번에 특정 명문대가 걸려서 대서특필됐지만, 솔직히 어느 학교에나 있는 일이다.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 같다"며 "시험 치는 과정을 손 다 나오게 촬영했는데도 걸린 거면 간이 큰 거다. '설마 그 많은 학생을 일일이 확인하겠냐'는 생각으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교양 수업이나 글쓰기 과제는 대부분 GPT로 문장을 다듬거나 영어 문법을 교정받는다. 과제를 전부 맡기진 않더라도, 안 쓰면 손해 같고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대학생 이모 씨(23)도 "우리 학교도 매 학기 GPT로 커닝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며 "어떤 수업에서는 단톡방에서 GPT로 답을 효율적으로 뽑는 법을 공유한다"고 했다.

수도권 대학에 재학 중인 박모 씨(21)는 "90% 이상이 쓴다고 봐야 한다. 나는 직접 자료를 찾고 GPT에 '다듬어 달라'고 요청하는 식으로 쓴다"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91.7%가 과제나 프로젝트에 생성형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미 'AI를 안 쓰면 불리한 구조'가 대학가의 일상이 된 셈이다.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는 ‘GPT 감별기’, ‘휴먼봇 탐지기’ 같은 프로그램을 회피하는 법이나
‘카피킬러’에 걸리지 않게 문장을 재작성하는 요령까지 공유되고 있다. GPT 사용을 금지하는 규범보다 ‘들키지 않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먼저가 된 현실이다.

서울의 한 여대에 재학 중인 강모 씨(24)는 "교수님이 AI 감별 프로그램을 돌릴까 봐 미리 'AI 탐지기'를 돌려본다. 솔직히 GPT가 다 해주는 수준이라 이제는 시험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2~3년 전만 해도 선배들은 논문도 과제도 직접 했다는데, 지금은 GPT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그게 신기하다. 이제는 모르는 게 있으면 GPT에 먼저 묻는다"고 했다.

커닝 논란이 인 대학 중 한 곳에 다니는 최모 씨(20)는 "10명 중 8명 이상은 GPT를 쓴다"며 "문과·이과 상관없이 과제 하거나 수업 자료를 요약하고, 시험 준비할 때 모두 이용한다"고 말했다.◇"AI 쓰지 말라면서 비대면 시험?"…제도 현실성 논란
일각에서는 "AI 부정행위의 책임을 오로지 학생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대학들이 재정 효율성을 이유로 비대면 강의를 대폭 늘리며 관리 부담은 줄이고 수익성만 높인 결과라는 것이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연세대의 대형 강의(수강생 201명 이상)는 2020년 75개에서 지난해 104개로 늘었고, 비대면 강좌는 2023년 2학기 34개에서 올해 321개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AI 탐지 시스템이 없는 온라인 시험을 유지하면서 학생의 '선의'에 의존한 평가가 계속된 셈이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먼저는 규칙을 위반한 학생들의 잘못이 맞지만, AI를 안 쓰게 하려면 철저히 오프라인 감독을 해야 했다"며 "학생들이 AI를 사용하지 않게 만들려면 시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수백명을 비대면으로 시험 보게 하면서 'AI는 쓰지 마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라며 "AI를 잘 쓰는 학생이 오히려 똑똑한 세대라는걸 인정해야 하고 이제는 그걸 두려워하거나 막을 게 아니라 'AI를 내면화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명주 바른AI센터장은 "AI가 이미 보편화된 만큼 교수들은 학생들이 AI를 쓴다는 전제를 가져야 한다"며 "이제는 교육과 평가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교수가 ‘AI를 쓰면 능력이 줄어든다’고 우려하지만, 과목별로 AI 활용이 가능한 평가와 그렇지 않은 평가를 구분해야 한다"며 "AI를 완전히 막으려면 강의실 내 전면 차단 같은 물리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이어 "이번 커닝 사건은 학생들의 일탈이기도 하지만, 대학 교육이 AI 시대에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며 "이제는 전공별·강의 형태별로 대학이 AI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고, 학생들도 AI 윤리 교육을 통해 ‘쓰지 않아야 할 때는 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연세대 에타 투표 절반 이상 "자연어 수업 커닝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연세대 '자연어처리(NLP)와 챗GPT' 수업에서는 600명이 넘는 학생이 비대면으로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50명가량의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이 중 40명은 스스로 자수했다.

한경닷컴 취재 결과 11일 기준 연세대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진행된 '자연어 치팅했는지 양심껏 투표해보자'에는 비 수강생을 제외한 438명 중 243명이 '커닝했다',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누른 사용자를 제외한 194명이 '직접 풀었다'에 투표했다.

다만 수강 여부를 검증할 수 없는 구조였고 '친중 또는 비 수강자' 같은 장난성 문항이 포함돼 신뢰도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절반 이상이 부정행위를 했다"는 인식은 확산했다. 커뮤니티에는 "작년에 같은 수업을 들은 동기들은 GPT로 A+ 받았다", "이번엔 타이밍이 나빴다", "인생은 타이밍" 등의 글이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같은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사이에는 "챗 GPT 수업에 챗 GPT 써서 A+ 받았다", "GPT 딸깍으로 A+", "유료 버전 있으면 A 못 받는 게 더 힘들다"는 후기도 공유됐다

고려대에서도 교양과목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중간고사 중 일부 학생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문제와 답안을 공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는 강의 자료를 AI에 학습시켜 답을 만들어 제출하기도 했다. 학교 측은 "도저히 부정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며 중간고사 전면 무효화라는 초강수를 뒀다.◇"GPT 등장 후 학생들 작문력·문장력 떨어져 필사 과제까지 내"교수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AI 사용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수도권 소재 대학의 교수 A씨는 "요즘 학생들 보면 예전보다 작문력도, 문장력도, 두뇌 회전력도 정말 많이 떨어졌다"며 "그래서 과목 내용과 상관없이 필사 과제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A씨는 "확실히 GPT 등장 전후로 학생 역량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시험지만 봐도 그렇다"며 "다만 챗GPT를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지식을 다듬는 용도로 쓰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교수 B씨는 "GPT를 과제에 너무 많이 쓰기 때문에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지는 않지만, 내용이 지나치게 비슷하면 조교들과 함께 점검한다"며 "이번 연세대·고려대 사태도 결국 비대면 시험이 문제였는데 요즘은 오프라인 시험도 오픈북이 아니라 '오픈 GPT'다. 대부분 학생이 GPT를 열어두고 답안을 작성한다고 봐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교수 C씨는 "학생들이 GPT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일부 과제나 시험에는 아예 'GPT 사용 가능'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며 "차라리 금지하기보다 '잘 쓰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를 막기보다 교육적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