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주식' 쇼핑 나선 외인들…英·아일랜드 등 유럽자금 4조 순매수

입력 2025-11-11 15:49
수정 2025-11-12 00:03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에서다.

11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 인도 대만 베트남 등 주요 10개 신흥국의 외국인 투자 동향을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외국인 순매도 1위이던 한국은 지난 9월 이후 순매수 1위로 올라섰다. 외국인은 상반기 한국 증시에서 105억달러(약 15조원)어치를 팔았지만 9월 이후에는 91억8000만달러(약 13조원)어치를 사들였다. 10개 비교 대상국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국 외에 외국인이 순매수한 국가는 대만(54억달러)이 유일했다. 외국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25억9000만달러) 베트남(-15억9000만달러) 인도(-8억5000만달러) 등 다른 신흥국에서는 차익 실현에 나섰지만 한국 주식은 매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한국 주식을 많이 사들인 미국 외에도 유럽 투자자가 공격적으로 ‘K주식’ 쇼핑에 나섰다. 9월 한 달간 영국(2조2000억원) 아일랜드(1조3000억원) 프랑스(7000억원) 룩셈부르크(4000억원) 국적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총 4조6000억원어치 사들였다.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등 그간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국가도 국내 주식을 총 1조4000억원어치 매수했다.

이 같은 극적인 반전의 배경에는 반도체가 있다. 외국인은 9월 이후 순매수한 13조원 가운데 삼성전자 한 종목만 10조원어치를 담았다.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9월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률은 각각 45.9%, 88.1%에 달했다. 국내 대형 반도체업체의 기업설명회(IR) 담당자는 “작년 말보다 해외 투자자 문의가 20% 이상 늘었다”며 “최근에는 남미 북유럽 아프리카의 금융회사들도 연락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적 개선이 뚜렷한 정보기술(IT) 업종은 물론 조선, 방위산업, 원자력발전 관련 종목도 외국인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가 신흥시장 강세를 주도하고 있다”며 “반도체를 비롯해 방산, 조선, K뷰티, K컬처, 의료관광 등 다양한 성장동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유럽계 투자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 국적 투자자가 국내 주식을 2조1910억원, 아일랜드 투자자가 1조323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전통적으로 국내 주식을 가장 많이 사들이던 미국 투자자는 순매수액이 9440억원으로 3위로 밀렸다. 정지태 한국투자증권 국제영업부 상무는 “유럽계 헤지펀드가 고평가된 미국 빅테크(대형 기술주)를 일부 덜어낸 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저평가됐다고 판단한 한국 증시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국 증시가 급등했지만 여전히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순이익 전망치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1.43배, 2.25배다.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3.1배)과 비교하면 주가 매력이 높다는 분석이다.

주가수익비율(PER)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의 내년 순이익 전망치 기준 PER은 8.39배로, 삼성전자(12.74배), 마이크론(12.1배) 등 주요 메모리 업체 가운데 가장 낮았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마이크론이 미국 시장 프리미엄을 받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