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상징과 기호 틈 사이로 말을 거는 고야와 디킨슨

입력 2025-11-11 14:57
수정 2025-11-11 14:58

위대한 예술가의 메시지는 시간을 거스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래리 피트먼은 이 말을 캔버스에 실현한 작가다. 그는 18세기 스페인의 사회적 모순을 풍자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와 은둔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개척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세계를 빌려 말을 건다.



서울 용산구 리만 머핀 서울에서 진행되는 작가의 개인전 ‘카프리초스와 야상곡(Caprichos
and Nocturnes)’은 작가가 10년 전 작업한 작품 10점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2000년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지난 6월 막을 내린 전라남도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서의 ‘래리 피트먼: 거울 & 은유’와 2024년 10월 끝난 중국 상하이 롱 뮤지엄에서의 ‘래리 피트먼: 거울 & 은유’에 이어 열리는 것이다. 앞서 열린 두 개인전이 지난 작가의 화업을 조명하는 회고전에 가까웠다면, 이번 전시는 두 개의 시리즈에 초점을 맞춘다. 2015년 제작한 ‘카프리초스(Caprichos)’와 ‘야상곡(Nocturne)’ 연작이다.



작가 목소리 대변하는 ‘카프리초스’와 ‘야상곡’

그의 작품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상징이 가득하다. 작가는 상징적인 텍스트와 미술사적 참조를 활용해 독창적인 언어를 구축해 왔다. 도끼와 톱과 같은 무기부터 새와 알, 꽃과 같은 자연의 상징, 원주민, 교수형 당하는 사람, 텍스트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주제가 모여 혼란스럽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카프리초스’ 연작은 프란시스코 고야가 18세기 말 선보인 동판화 연작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를 오마주했다. 고야가 당대 스페인의 성직자와 고위 관료, 귀족, 사회 제도 등의 부조리를 꼬집은 것처럼 래리 피트먼은 젠더, 글로벌 갈등과 같은 사회적 상황이나 딜레마 등을 표현한다. 여기에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스의 시구를 직접적으로 삽입해 그의 예술 세계를 인용한다.



작품 ‘카프리초스 #8’의 오른쪽 상단에는 디킨슨의 시 ‘They Dropped Like Flakes’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They dropped like flakes, They dropped like stars.(그들은 눈송이처럼 스러져 내렸다. 그들은 별처럼 떨어졌다)”는 시구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죽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현재 미국의 정치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작가는 “미국은 파시스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현재 최악의 재앙을 겪고 있다”며 “이 작품은 10년 전에 만들었지만, 미국 정치 상황이 우익화되고 세계적 갈등이 이어지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이슈를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가의 시각 언어, 해석보다는 몰입으로

카프리초스 시리즈는 시구를 담고 있어 선언적이지만, 야상곡은 내면화된 언어를 내밀하게 표현한다. 야상곡이라는 단어가 지닌 음악적 의미보다는 고요하고 내밀한 밤의 정서를 투영했다. 블랙 젯소를 입혀 어두운 밤을 표현한 뒤 그 위에 색을 입혀가며 작업해 흰백색의 캔버스를 바탕으로 작업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카프리초스와 야상곡 연작은 동시에 작업한 작품이다. 카프리초스를 작업하다가 탈진할 정도로 지쳤을 당시 야상곡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작가는 전했다. 작가에게 있어 밤이란 모든 것을 다 끝마치고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10년 전 작품을 지금 소개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김환기의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얼마 전 김환기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 봐도 매우 현대적이고 신선했다”며 “그의 작품을 비롯한 한국의 초기 추상화가들의 작품이 전 세계에 매우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나를 비롯한 1990년대 미국 추상화가들의 이전 작품들도 다시 순환하며 관심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두 연작은 작가 특유의 밀도 높은 시각 언어가 특징이다. 화면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형상을 상징성과 의미를 지닌 기호로 여기고 일일이 해석하려 든다면 고정적인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게 된다. 작가는 상징마다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알아내려 하기보다는 관람자들이 본인만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길 원한다고 전했다.

“‘도덕’보다는 ‘윤리’라는 단어가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작품에 자신이 알고 있던 상징이나 의미를 투영하기보다는 유동적인 태도로 감상해 주길 바랍니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