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가 부산을 찾았다. 지난 6월 개관한 부산콘서트홀에 세계 3대 악단 중 하나가 공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콘서트홀만의 풍성한 울림을 백분 활용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천재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의 연주에 관객 대부분이 기립박수로 답했다.
부산 관객 “RCO·메켈레 공연 꿈 같아”
지난 9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공연은 시작 전부터 클래식 음악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등 이른바 세계 3대 악단은 올해 내한 공연에서 모두 합쳐 열 차례 공연한다. 이 중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 공연하는 일정은 이번 부산 공연이 유일했다. 부산콘서트홀은 대공연장 기준 2011석 규모로 비수도권에서 처음으로 2000석을 넘긴 대규모 클래식 음악 공연장이다. 정상급 오케스트라가 부산에 온다는 소식에 지난 8월 이 공연의 티켓 예매는 개시 1분 만에 매진됐다.
부산콘서트홀로서도 이번 공연이 각별했다. 이 공연장은 ‘월드 시리즈’란 이름으로 유명 악단의 내한 공연을 진행했다. 지난 9월 정명훈이 이끄는 이탈리아의 라스칼라 필하모닉, 10월 손열음과 협연한 런던 필하모닉이 부산을 찾았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는 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맡았다. 앞선 시리즈 공연 두 차례와 2023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서울 공연을 모두 관람했다는 부산 시민인 40대 여성 김태성씨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 메켈레를 부산에서 볼 수 있다니 꿈만 같다”며 “서울에 가지 않고서도 그들만의 섬세하고 유려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장은 공연 시작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하 1층 매표소엔 표를 받으려 200명이 넘는 인파가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악단의 첫 등장도 달랐다. 통상 대형 공연에선 지휘자가 객석과 접한 무대 앞면을 따라 포디움에 오르곤 한다. 반면 부산 공연에선 메켈레와 협연자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가 제1바이올린 연주자들 사이를 가르며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교향악도 실내악처럼 연주한다”는 메켈레의 지휘 철학을 고려한다면 객석에서 단원들과 지휘자의 친밀감을 더 체감하기 좋은 접근법이었다. 상대적으로 밝은 부산콘서트홀의 조명도 이들의 소통 과정을 과감없이 드러냈다.
부산콘서트홀을 익숙하게 다룬 RCO
공연 첫 곡이었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부산콘서트홀의 매력을 단번에 보여줬다. 서울 대형 공연장들과 비교하면 부산콘서트홀은 천장이 낮고 측면이 더 동그랗다. 여러 소리가 부드럽게 포개져 따뜻한 울림을 내기 좋다. 저층부 객석이 살짝 낮게 눕혀 있어 무대 음향이 관객들에게 바로 꽂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도 직접적이고 포근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부산콘서트홀은 악단 고유의 음색과 잘 어울렸다.
로자코비치는 절제와 감미로움 사이를 오가면서 악단과 긴밀하게 합을 맞췄다. 메켈레와 이따금 눈을 맞출 땐 미소를 지었다. 객석에선 관객 몇몇이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뮤지컬을 보듯 두 20대 음악가의 호흡을 지켜봤다. 로자코비치가 앙코르로 선보인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연주는 바이올린의 화려함과 섬세함이 폭발하는 시간이었다. 한국 투어 중 길게 자라 눈썹을 가려버린 로자코비치의 앞머리는 지난 6일 롯데콘서트홀 공연보다 더 찰랑거렸다.
말러 교향곡 5번 연주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부산콘서트홀의 음색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령의 발걸음처럼 쫓아오던 1악장의 트럼펫 소리가 지나가자 부드럽고 풍부한 현악기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3악장에선 호른 독주와 클라리넷의 다부진 소리가 관객들에게 황홀함을 안겼다. 5악장에선 천상의 소리를 재현한 듯한 바이올린과 지상의 울림이 섞인 첼로의 기민함이 돋보였다. 메켈레는 구두 굽 소리가 들릴 정도로 격정적인 몸짓을 더해 에너지 넘치는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 몸처럼 움직였던 악단이 환희로 가득 찬 연주를 마치자 객석에선 연주의 잔향을 몇번은 뒤덮고도 남을 만큼 큰 환호성이 쏟아졌다. 1·2층 가릴 것 없이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 치기 시작하자 곧 객석에선 앉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메켈레는 땀이 섞인 환한 미소로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일으켜 세우며 청중의 환호를 유도했다. 공연이 끝난 뒤엔 관객 몇몇이 내년 해외 악단의 부산콘서트홀 방문 여부를 스마트폰으로 알아보면서 여운을 달랬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이날 관객들과 공연의 열기를 함께 나눴다.
부산=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