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200피(코스피지수 4200)'를 찍고 하락한 국내 증시의 '빚투(빚내서 투자)' 잔고가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개인투자자들의 빚투는 코스피 주식에 집중됐다. 조선·방산·전력인프라를 비롯한 자본재 종목과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종목에 주로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금투업계에선 역시 올들어 최대 규모를 경신한 반대매매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증시 빚투 최대치…코로나때보다 많아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가장 최근 거래일인 지난 6일 기준 국내 증시 신용융자잔고는 25조8781억5200만원에 달했다. 신용융자잔고는 개인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거래한 규모를 뜻한다.
이는 기존 최대치인 2021년 9월 13일 25조6560억2100만원을 약 2221억원 웃돈다. 2021년 9월은 코로나19 여파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각국이 빠르게 금리를 내려 유동성 장세가 이어지던 시기다. 당시 20대 신용융자 이용자 수가 코로나19 전인 2019년 말에 비해 2.9배 급증하기도 했다. 2020년 '동학개미운동'을 전후로 국내 증시 관심도가 확 오른 와중 증시 상승세를 기대한 이들이 신용을 끌어 주식을 사들인 영향이었다.
지난 6일 기준으로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신용융자잔고는 16조930억원, 코스닥은 9조7848억원으로 코스피 빚투 규모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 여파로 국내 증시가 얼어붙은 채였던 지난 1월초 코스피 신용잔고가 9조1577억원, 코스닥 신용잔고는 6조5245억원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코스피지수가 단기간에 4200선을 밟으면서 코스피에 신용거래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빚투' 43%가 조선·방산·반도체 등에 집중올해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신용매수는 조선·방산·전력인프라 등 자본재와 반도체 종목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들어 주도주로 꼽혀 급등한 섹터에 빚투가 몰렸다는 얘기다.
지난달 31일 결제일 기준으로 자본재 종목에 3조9000억원어치가 몰려 전체 신용잔고의 27.7%를 차지했다. 반도체주 신용 매수 규모는 전체의 15.8% 수준인 2조2000억원에 달했다. 그 다음으로 신용융자가 많았던 섹터는 화학·철강·비철금속을 비롯한 소재 섹터(신용잔고 1조5000억원·10.8%)였다.
2021년과 달리 최근 개인투자자 빚투는 현금매수와 엇갈린 방향으로 늘어난 현상도 두드러진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국내 증시 상승세가 올해 4월부터 10월 말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든 일반(현금) 매수에선 순매도세를 보인 반면, 신용매수는 오히려 늘렸다"며 "통상 한 주체가 현금이든 신용이든 같은 방향으로 매수·매도를 하는 일반적인 패턴과는 다른 게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도 '인버스족'과 '레버리지족'이 나뉜 영향이란 게 이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지난 4~10월 외국인과 기관이 순매수하며 코스피지수가 가파르게 오르자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주도주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해 빚을 끌어 레버리지 투자를 벌였고, 다른 이들은 조정을 기대해 그간 상승했던 현금 기반 주식 포지션을 순매도했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 연구원은 "신용융자가 빠르게 늘어난 동안 한편으로는 개인투자자 상장지수펀드(ETF) 순매수 1위 종목이 KODEX 200 선물 인버스 2X였다"며 "이는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전망과 투자전략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부 섹터에 몰린 빚투…"반대매매 유의해야"이같은 분위기에 반대매매 리스크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대매매란 빚으로 산 주식의 가격이 떨어져 담보 가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졌을 때 증권사가 담보로 한 주식을 강제로 팔아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 절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일 반대매매 규모는 약 218억6500만원으로 올들어 가장 컸다. 지난 한달 일평균 반대매매 금액인 75억원의 약 세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비중은 지난 1월 평균 0.49%에서 지난 6일 2.3%까지 커졌다.
빚투가 국내 시총 비중이 높은 일부 섹터에만 몰린 만큼 반대매매 규모가 늘 경우 지수가 확 출렁이기 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양대 반도체 대형주 삼성전자(579조5326억원)와 SK하이닉스(422조2414억원)의 시총 합산만 해도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3252조80억원)의 30%가 넘는다. 여기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오션 등 주요 자본재주를 합하면 비중은 더 커진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신용융자가 집중된 자본재·반도체 업종은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며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에 따라 해당 업종 가격 하락이 증폭될 우려가 있고, 지수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상당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