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홀의 공기마저 숨죽였다…77세 정경화의 위대한 귀환

입력 2025-11-09 17:04
수정 2025-11-10 00:27

미국 뉴욕 카네기홀은 정경화가 1967년 열린 레번트릿 콩쿠르 결선에 섰던 무대다. 아홉 살에 서울시향과의 연주로 데뷔한 정경화는 열아홉 살에 이곳에서 결선을 치렀고, 심사위원들은 ‘재경연’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언론은 정경화의 연주를 가리켜 “도자기 인형처럼 침착하고 사랑스러운 연주”라고 할 만큼 흠결이 없는 완전한 무대였다고 했다. 반면 핀커스 주커만은 “손가락이 꼬여버릴 정도로 긴장이 컸던 무대였다”고 털어놓아 화제가 됐다. 재경연을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정경화가 대기실에서 낮잠을 청했다는 일화는 그의 침착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커만과 공동 1위에 오른 정경화의 커리어는 카네기홀 무대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탔다. 뉴욕 필하모닉과 시카고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곧바로 메이저 무대로 올라섰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혜택을 받았다. 이후 나탄 밀슈타인을 대신해 백악관 갈라 행사에 초청됐고, 1970년 이츠하크 펄먼을 대신해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계기로 한국인 최초 데카 아티스트로 독점 계약을 맺었다. 데카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던 클래식 음반 레이블 가운데 하나였고, 동양의 젊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제안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정경화는 데뷔 앨범부터 뛰어난 평가를 받으며 투어를 이어갔고, 주요 무대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7일 카네기홀 리사이틀은 정경화가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이후 8년 만에 다시 선 무대다. 올해 77세를 맞이한 정경화의 리사이틀을 찾은 관객들은 무엇을 기대했을까.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카네기홀 무대에서 그가 어떤 선물을 꺼내 보일지 기다리는 객석의 기대감이 느껴졌다.

정경화와 케빈 케너는 낭만시대 작곡가 세 명의 작품으로만 꾸렸다. 첫 곡은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슈만은 내면을 말하는 작곡가다. 서정성이 강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격렬하고 불안정하다. 정경화는 이 드라마를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안내했다. 왼손은 과감한 시프트를, 오른손은 단호한 필치로 작품을 이어갔다. 연주 초반에는 사운드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2800석 규모의 카네기홀 스턴 오디토리움은 솔로 리사이틀에 최적화된 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두 명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객석까지 또렷하게 닿기 전에 공간으로 쉽게 흩어지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특유의 날카롭고 직선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던 정경화였다면 느낌이 조금 달랐을까.

35년 만에 정경화의 연주를 다시 찾았다는 한 관객은 “예전과 같은 에너지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거장의 풍모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객석 분위기도 비슷했다. 무대 위 숨소리에까지 귀를 기울이며, 희미하게 사라지듯 노래하는 느린 장면에서도 누구 하나 집중력을 놓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연주한 그리그 소나타 3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소리 크기의 스펙트럼을 넘어서는 그의 표현력이었다. 다이내믹한 리듬을 얹은 서정미는 아름다운 대비를 이뤘고, 작품이 전면에 내세우는 극적인 대조가 생동감 있게 드러났다. 이날 공연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꼽는다면 케너의 연주로 시작되는 2악장이었다. 피아노가 연주하는 첫 40여 마디는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듣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녹여냈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피아노 솔로를 지나 선율을 이어받은 정경화는 케너가 건넨 따뜻한 선율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라벨이 연상되는 3악장 도입부에서 정경화는 관중이 가득 모인 서커스장에서 능숙하게 외줄을 타는 연기자가 됐다. 그의 활 동작 하나하나에는 확신과 목적이 담겨 있었다. 노르웨이 민속 음악의 색채가 곳곳에 스며 있는 이 작품은 전체 프로그램에 다양함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프랑크 소나타는 낭만주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정점에 놓인 작품으로 꼽힌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반복되며 구조적 완성도가 높다. 정경화도 음반과 공연에서 이 곡을 여러 차례 연주하며 특별한 애착을 보여왔다. 이날 두 연주자는 눈을 맞추지 않아도 숨결만으로 서로의 의도를 읽어내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특히 4악장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아가는 순간, 흑백 화면 속 젊은 정경화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마다 다가오는 감동은 시간의 층위가 열리고 과거와 현재가 스쳐 갈 때 느껴지는 전율에 가까웠다.

프로그램을 마친 뒤 두 사람은 청중의 환호와 커튼콜을 앙코르로 화답하며 교감을 이어갔고, 홀에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흥이 맴돌았다. 모든 관객은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장면을 꺼내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공연은 연주가 좋았다는 기억보다 그 무대가 불러온 분위기와 남겨진 여백이 더 오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경험은 각자의 기억과 만나서 더 길고 깊은 흔적으로 기록된다. 이 무대가 그랬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