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세운4구역) 재개발을 놓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가 정면충돌했다. 세운상가에 높이 145m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한 서울시의 결정에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문화유산 능욕을 좌시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즉각 “종묘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일인데, 지나치게 과도한 우려”라는 입장문을 냈다. ◇서울시 vs 문체부 설전최 장관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7일 서울 종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의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에 따른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는 고시를 통해 세운재정비촉진지구와 세운4구역에서 가능한 건축물의 최고 높이를 70m에서 145m로 변경했다. 최 장관은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자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곳”이라며 “이런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 장관과 허 청장은 종묘 입구인 대위문에서 종묘 정전까지 걸으며 경관을 둘러본 뒤 서울시를 상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 장관은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이게 바로 1960~19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 아닌가”라고 말했다. 허 청장도 “정부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첫 등재했던 게 종묘인데, 높은 빌딩은 수백 년간 유지해 온 우리 역사 문화 경관을 위협할 것”이라며 “이런 위험을 자초한 건 대한민국 수도이자 유산 보호 책무가 있는 서울시”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도 즉각 반박에 나섰다. 오 시장은 이날 오후 긴급 입장문을 통해 “(문체부 등이) 서울시 세운 녹지축 조성 사업과 관련해 사업의 취지와 내용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세운지역 재개발 사업이 종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도한 우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오랜 기간 개발되지 못한 채 방치된 세운지구가 종묘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도 했다. 오 시장은 “1960년대를 연상시키는 세운상가 일대 붕괴 직전의 판자 지붕 건물들을 한 번이라도 내려다본 분들은 이것이 수도 서울의 모습이 맞는지, 종묘라는 문화유산과 어울리는지 안타까워한다”며 “(이번 개발이) 종묘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운상가 재개발 다시 표류하나종묘 인근 개발에 대한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은 2023년 이후 첨예하게 이어지고 있다. 문체부는 2023년 9월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서울시 문화재 보호 조례 일부개정안’을 무효로 해달라며 소송까지 걸었다. 하지만 지난 6일 대법원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그 주변을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한 구역 밖에선 지방자치단체 재량에 따라 개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자리해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었던 서울 종로 세운상가의 재개발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문체부가 강력 반발에 나서면서 개발이 다시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문체부 기자회견에선 세운4구역에 거주하는 한 시민이 “문체부는 대법원 판단을 존중하라”며 최 장관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개발업계에 따르면 사업 지연으로 이 지역 주민이 지출한 누적 금융비용만 6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문체부와 대화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서울시에 아무런 문의도 의논도 없이 마치 시민단체 성명문 낭독하듯 지방정부의 사업을 일방적으로 폄훼하는 모습에 강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대화를 통해 논의를 이어가면 얼마든지 ‘도시공간 구조 혁신’과 ‘문화유산 존중’이라는 충돌하는 가치를 양립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영연/이주현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