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가 물량 공세로 한국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일본산 산업용 로봇에 칼을 빼 들었다. 국내 로봇 가격과 맞추기 위해 오는 21일부터 최대 43.6%의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산업용 로봇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건 2005년 이후 20년 만이다. 이제 막 커가고 있는 로봇산업에 장벽을 쌓지 않으면 시장을 완전히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20년 만에 로봇 반덤핑 관세
기획재정부는 중국·일본산 4축 이상의 다관절 로봇(4개 관절이 갖춘 로봇)에 대해 21일부터 내년 3월 20일까지 4개월 동안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6일 고시했다. 관세율은 21.17~43.6%다. 세계 2위 로봇회사인 가와사키중공업과 화낙(4위), 야스카와전기(5위)뿐 아니라 중국 쿠카로보틱스 등 신흥 산업용 로봇 업체들이 반덤핑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최종 관세율은 정부가 내년 3월 20일까지 추가 조사를 한 뒤 결정한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본조사까지 마친 뒤 덤핑률을 결정하지만, 현재 피해가 계속된다고 판단하면 잠정 관세 형태로 관세를 바로 물릴 수 있다”며 “정식 판정에서도 관세율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반덤핑 관세를 매긴 이유는 중국과 일본 회사들이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자국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넘기고 있어서다. 지난해 3월 한 국내 완성차 회사가 발주한 산업용 로봇 입찰이 대표적이다. 화낙과 쿠카로보틱스는 재고 소진을 위해 자국 판매가보다 28~44% 저렴한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세는 일본과 중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산업용 로봇에 매겨질 전망이다. 산업용 로봇은 주로 로봇팔 형태로,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움직이면서 물건 운반, 조립, 도장, 용접 등 업무를 수행한다. 협동로봇과 휴머노이드 등은 덤핑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HD현대·유일로보틱스 수혜국내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중국·일본 업체의 점유율은 약 70%에 달한다.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국내 1위 HD현대로보틱스와 유일로보틱스 등을 합쳐도 30% 수준에 그친다. 업계는 반덤핑 관세가 없으면 국내 회사는 점유율 30%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산업용 로봇은 연 1만2000~1만5000대로 전체 시장 규모는 3000억~4000억원 수준이다.
중국은 글로벌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 1위 국가다. 지난해 새롭게 설치된 산업용 로봇 54만2000대 가운데 중국이 29만5000대를 차지해 점유율 54.4%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원가가 20~30% 정도 낮은 데다 정부 지원과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기술력에서 세계 1위인 일본도 연 15만 대 이상의 산업용 로봇을 생산해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한국 기업에 앞서고 있다. 한국 기업의 연간 생산 대수는 5000대 이하로 알려졌다. 한국은 핵심 부품의 70% 정도를 일본과 독일 등에서 수입해 오는 등 국산화율도 낮다.
업계에선 반덤핑 관세 부과로 한국 기업이 반등할 기회를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HD현대로보틱스 관계자는 “점유율뿐 아니라 대당 마진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협동로봇과 휴머노이드 등 신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