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키려 뉴욕 희생 못하는 美 안보 딜레마…‘K핵잠’이 온다

입력 2025-11-07 08:47
수정 2025-11-07 09:31
[비즈니스 포커스]




2025년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로 핵연료로 움직이는 잠수함(핵잠) 건조를 공식 승인하면서 전 세계의 시선이 한국으로 쏠렸다.

유튜브 검색어 1위가 ‘핵잠수함’일 정도로 관심이 폭증했지만 실제 사업화까지는 핵연료 확보, 조선소 건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복잡한 기술·외교·법적 허들이 남아 있다. 노무현 정부의 ‘362사업’부터 이번 승인까지 20년 넘게 이어진 ‘핵잠의 꿈’이 비로소 현실로 향하고 있다. 7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K핵잠’ 관련 핵심 쟁점을 짚는다.

① ‘K핵잠’ 쐐기 박은 트럼프, 왜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핵잠 건조 승인 직후 한국의 핵잠 확보 구상이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결정의 배경엔 북한의 핵·잠수함 전력 고도화가 있다. 북한은 최근 6000~7000톤급 핵추진 잠수함을 공개하며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전력화를 서두르고 있다.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 지원의 대가로 소형 원자로 기술을 이전했을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수중에서 핵미사일을 은밀히 운용할 수 있는 북한의 능력이 강화되면 한·미의 기존 억제 체계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핵잠 확보는 이 같은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전력’으로 평가된다. 핵추진 잠수함은 장기간 잠항이 가능하고 탐지가 어려워 북한의 SLBM 전력에 대한 유일한 실질적 견제 수단으로 꼽힌다.

특히 한·미 확장억제 체계가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이 주도적으로 전략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핵잠은 단순한 해군력 보강이 아니라 한반도의 핵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의 핵잠 개발은 단순한 군사적 대응을 넘어 기술·산업 전략의 의미도 크다. 원자로·소형모듈원전(SMR)·조선 기술을 융합한 첨단 복합산업으로 원전 수출과 해양 방산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이끌 수 있다.




② 서울 지키기 위해 뉴욕 희생?…워싱턴의 고민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나.” 냉전기의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발언이 지금 워싱턴의 현실로 되살아났다. 미국은 본토 방어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를 국방 전략의 중심에 두며 동맹국에는 ‘자체 방위’의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국방부) 장관이 배포한 임시 국가방어전략 지침에서도 “중국은 유일한 추격 위협(pacing threat)”이라며 북한과 러시아를 포함한 ‘중국 이외의 위협’에 대한 대응은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핵잠 건조 승인 역시 이런 기조의 연장선이다. 미국이 더 이상 한반도 핵 위협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한국이 스스로 억제력을 강화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신호탄이다.

이 같은 전략 변화는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성이 흔들리는 ‘찢어진 핵우산’ 현실과 맞닿아 있다. 한국의 핵잠 보유 허용은 동맹의 결속이라기보다 미국이 ‘서울을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없는’ 시대에 내놓은 냉정한 선택이다.




③ 왜 ‘필리조선소’가 논란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직후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을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필리조선소는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지분을 보유한 미국 법인이지만 잠수함 건조 경험이 전무한 상업조선소다. 고강도 압력선체나 원자로 탑재 시설 등 핵잠 생산에 필수적인 설비가 없어 실질적 건조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또 미국 전쟁부 방위산업체 명단에도 아직 오르지 않아 군수 계약이나 기술이전이 제한된다. 방산 기업으로 지정될 경우 연방정부의 통제를 받게 돼 한화의 경영권과 기술 자율성도 제약된다. 결국 ‘필리조선소 건조’는 한국형 핵잠이 아닌 ‘미국 통제형 모델’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미 3600톤급 잠수함을 건조한 경험이 있으며, 해군의 최신형 ‘장영실급’ 잠수함은 디젤·전기 추진이지만 핵 추진으로 전환 가능한 구조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국내에서 5000톤급 이상 핵잠수함을 건조하더라도 일부 설비 보완만으로 가능해, 해외 조선소보다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국내 조선소가 3600톤급 잠수함 건조 경험을 갖고 있는 만큼 국내 건조를 우선 검토 중이다. 다만 현실적 절충안으로 첫 선도함은 미국에서, 이후 함정은 국내에서 제작하는 ‘오커스(AUKUS)형 병행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발언을 미국 조선업 부흥을 위한 ‘MASGA(마스가)’를 겨냥한 정치적 제스처로 해석하고 있다.



④ 핵잠과 디젤잠, 어떻게 다른가

핵추진 잠수함은 단순한 전력 증강이 아니라 해양 전략의 판도를 바꾸는 전력으로 꼽힌다. 동북아 해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핵잠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디젤잠수함은 산소 공급 한계로 20~30일 이상 작전이 어렵고 주기적 부상으로 탐지 위험이 크다. 반면 핵잠은 원자로 동력으로 6개월 이상 잠항이 가능하고 속도도 최대 35노트에 달한다. 사실상 작전반경·은밀성·지속력 모두에서 디젤잠을 압도한다.

한국 해군은 5000톤급 이상, 4척 이상의 핵잠을 2035년 전후 실전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장보고-Ⅲ 배치-Ⅲ급은 이미 핵추진 전환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 제약으로 인해 현재는 디젤잠수함만 건조할 수 있다.

핵잠 건조를 위해서는 미국의 농축우라늄 사용 승인과 핵연료 기술 협력이 전제돼야 한다.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해 6000~7000톤급 핵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역시 ‘대잠 균형 전력’ 확보가 절실해졌다.





⑤ 번번이 좌절됐던 K핵잠 개발, 왜?

그간 한국이 핵잠을 건조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기술력의 문제가 아닌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국의 핵 비확산 원칙이라는 외교적 제약 때문이다. 1974년 체결된 협정은 한국이 미국의 동의 없이 군사용 핵물질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역대 정부는 핵잠 개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미국의 반대에 막혔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6월 러시아로부터 소형원자로 기술 습득을 시도하는 등 비밀리에 ‘362사업’을 추진했으나 이듬해 언론에 노출되며 ‘핵 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미국의 강력한 제재 우려 속에 중단된 바 있다.

현행 협정(2015년 개정)은 한국이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을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뿐 군사용 핵잠 연료 사용은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핵잠 연료는 저농축이라도 군사용으로 분류돼 협정 개정 없이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잠 건조를 사실상 승인하면서 외신들은 이를 “한·미 원자력 협력의 역사적 전환”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자체 잠수함 건조 및 소형원자로 설계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핵연료 공급이라는 외교적 난제를 해결해야만 핵잠 보유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할 전망이다.




⑥ 누가 수혜를 볼까?

핵잠 사업이 본격화되면 가장 직접적인 수혜는 한화오션이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장보고-Ⅲ급 잠수함을 설계·건조한 유일 기업이며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한화 필리조선소)도 한화 계열이다. 국내외 조선 역량을 동시에 가진 만큼 핵잠 블록 제작과 한·미 협력 프로젝트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HD한국조선해양도 변수다. 미국 헌팅턴잉걸스와 협력해 미 해군 군수지원함 공동 건조를 추진 중이며 핵잠 사업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조선소 건조분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함정용 원자로·터빈·증기발생기 공급망의 핵심으로 꼽힌다. SMR 기술을 이미 확보해 해군용 추진체계 전환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한전기술과 한전KPS는 원자로 제어·냉각계통 정비 분야에서, 일진하이솔루스, 한온시스템 등은 내열합금·압력용기·냉각소재 분야에서 간접 수혜가 예상된다. 다만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미국 승인 절차, 연료 조달 문제 등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정부가 ‘장기적 안보 자산’으로 핵잠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책 지연 시 기업 실적 반영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시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방산이 아닌 조선·원전·에너지 안보가 융합된 복합 산업 생태계로 보고 있으며 단기 테마보다 중장기 구조 성장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⑦ 남은 과제

핵잠 확보 사업이 본격화되면 역대 최대 규모 무기 도입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국방부는 5000톤급 핵잠수함 4척 이상 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으며 건조 비용만 12조~18조원,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까지 포함하면 총사업비가 2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16조원 이상 투입된 KF-21 전투기 사업을 능가하는 규모다.

사업 추진에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나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한 핵연료 군사용 사용 허용, IAEA 검증 체계 구축, 핵잠 설계·건조에 필요한 국내 기술과 부품·소재 확보, 예산 확보 등 다층적 과제가 걸려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활용하면 6개월~1년 내 처리 가능하지만 실제 첫 건조는 10~15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핵잠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6개국만 보유하며 호주는 2030년경 미국 기술 지원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북한은 핵잠 개발을 추진 중이며 일본도 도입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이 2030년대 중반 이후 자체 건조에 성공하면 세계 8번째 핵잠 보유국이 된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의 사업단 구성과 주변국 반발, IAEA 검증, 한·미 협력 조율 등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