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형 빅테크들이 빚을 내면서까지 인공지능(AI) 투자에 사활을 건 가운데 월가에서는 "AI에 거품이 끼었다"는 우려가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관련 주식에 베팅하며 공격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에 나서고 있다.
5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 10월27~31일(결제일 10월29일~11월4일) 사이에 미국 증시에서 서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메타 플랫폼스였다. 서학개미는 이 기간 메타를 5억3257만달러어치(약 7700억원) 순매수했다.
다음은 엔비디아(3억1824만달러·약 4501억원)였고, 세 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은 메타 플랫폼스 주가의 하루 변동폭을 2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메타 불(BULL) 2x 셰어즈 상장지수펀드(ETF)로 2억2641만달러(약 3273억원)어치를 담았다. 4위 순매수 종목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1억745만달러·약 1554억원)이다.
이들 글로벌 빅테크들은 최근 채권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 화제를 모았다. 메타는 지난달 30일 채권을 발행해 최소 250억달러(약 35조8000억원)의 자금 조달을 추진했다. 메타는 자금 조달 소식이 전해진 날 11% 넘게 하락했고 이후로 지난 4일까지 나흘 연속 밀렸다. 이 기간 주가는 총 16.54% 하락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최근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총 250억달러(약 36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유럽에서 65억유로(약 10조79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한 데 이어서 미국에서도 회사채 175억달러(약 25조3000억원) 규모를 찍어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빅테크들의 일명 'AI 빚투(빚내서 투자)' 소식이 알려지면서 월가에선 빅테크들의 과도한 AI 분야 투자가 회사의 재무제표에 부담을 줄 수 있단 경고가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미국 기업들의 AI 인프라 관련 채권 발행 규모가 2000억달러(약 289조원)에 육박한다"며 "대규모 차입 투자가 부실화할 경우 금융시장이 큰 위험을 떠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도 기술주 중심의 과열을 경계했다. 그는 전날 홍콩 소재 행사에서 "향후 1년, 혹은 2년 내에 증시가 10~20%의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서학개미들은 이 같은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매수로 대응하고 있다. 빚투를 'AI 패권'을 잡기 위한 선제적 투자에 나선 것으로 해석한 모습이다.
슈퍼개미(고액 자산가)인 한 주식 투자 전문가는 "잇단 빅테크들의 자금조달은 AI 사업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는 재료라고 생각한다. 기업들은 '절대 밀려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며 "향후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이 '러시'에 뛰어든다면, 시장이 자금조달 소식을 '악재'가 아닌 '대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의도 증권가도 우려보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과도한 자본조달을 통한 대규모 AI 투자가 향후 투자과잉과 부채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투자 과잉을 논할 때가 아니다"라며 "AI 사이클이 본격적인 대중화 국면에 접어들고 있고, 미국과 중국은 물론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상당 기간 AI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AI 투자 수익성이 확인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