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철강산업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는 것은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내수 부진과 글로벌 공급과잉, 보호무역 강화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정부는 업계 자율로 철근 등 범용재 설비 감축을 유도하는 구상을 내놨다. 업계에서는 감산 과정의 손실 보전이나 비용 부담 완화 등 구체적 지원이 빠져 감산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 철근 줄이고 특수강 키운다이번 방안의 핵심은 공급과잉이 심한 철근·형강·강관 등 저부가 범용 제품의 감산이다. 정부가 직접 감산을 주도하기보다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감산 계획을 제출하면 ‘기업활력법’에 따라 세제·금융·규제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산업통상부는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에 있는 기업은 자산 매각 시 세제특례를 적용받고, 필요할 경우 ‘철강특별법’ 제정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용재 중심의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투자도 본격화한다. 정부는 특수탄소강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삼고 2030년까지 10개 특수강 품목에 2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특수강 로드맵’은 두 방향으로 구성됐다. 조선·에너지용 고망간강·니켈강 등 5개 품목은 현재 세계 3위 수준인 기술력을 2030년까지 1위로 끌어올리고, 자동차·방위산업·우주항공용 고규소강 등 5개 품목은 생산량을 늘려 특수강 비중을 현재 12%에서 20% 이상으로 높인다는 구상이다.
금융 지원도 병행한다. 미국의 50% 관세 부과로 피해를 본 기업을 대상으로 무역협회가 200억원 규모의 긴급 융자자금을 편성했고, 한국무역보험공사는 포스코와 기업은행 출연을 기반으로 4000억원 규모의 ‘수출공급망 강화보증상품’을 신설했다. ◇ 업계 “감산 유인 부족”철강업계는 정부의 산업 구조 전환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장에서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정부가 내세운 ‘자율 구조조정’ 방식이 실질적인 감산 유인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제시한 인센티브는 대부분 기존 제도인 ‘기업활력법’ 및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세제특례’ 범위 안에 머물러 있다. 신규 보조금이나 설비 감축 보전금, 전직지원금 등 직접 지원은 빠졌다.
정부가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한 철근의 경우 국내 1, 2위인 동국제강과 현대제철이 이미 근로시간 단축과 공장 가동 조정 등 자구책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한 중견 철강사 관계자는 “이미 생산량을 최대한 줄인 상황에서 추가 감산을 하려면 설비 폐쇄, 인력 구조조정 같은 극단적인 선택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한 구체적 보완책이 없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전기요금과 원료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생산비 절감 대책이 빠진 점도 한계로 꼽힌다. 철스크랩을 녹여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전기로 비중이 높은 제강사들은 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웃돈다. 전력요금 특례와 에너지 효율 투자 지원 등 생산비 부담을 덜어줄 병행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지원책 역시 구조조정보다 단기 유동성 대응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평가다. 이번에 편성된 융자·보증 프로그램은 수출기업 중심으로 설계돼 내수 비중이 큰 중소 제강사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은/김우섭/김대훈 기자 hazzys@hankyung.com